2018031101000814900038201

2016년 미대선 유세중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협상을 할 것이다"라고 허풍처럼 공언했던 미 트럼프대통령의 발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하는 거 봐서'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미·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봄' '한반도 평화의 대 전환점' 등 언론은 일제히 희망 메시지를 쏟아냈다. 하지만 갈등을 겪는 국가 정상들의 회담은 성사부터 결과까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1959년 9월 25일 후르시초프는 미국을 전격 방문해 아이젠하워를 만났다. 2차 세계 대전 후 으르렁거리기만 했던 정상들의 첫 회담이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후르시초프는 다음해 파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만남은 1961년에 가서야 빈에서 이뤄졌다. 아이젠 하워가 케네디로 바뀌었을 뿐, 양국 정상은 혹독한 냉전체제의 현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후 미·소관계는 쿠바 위기까지 겪으며 더욱 더 냉각됐다.

닉슨이 미 대통령 신분으로 처음 소련을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에야 이뤄졌다. 그 후 17년이 지난 1989년 몰타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만나 냉전구도의 종언을 선언했다. 이 역시 동구권의 몰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결과를 끄집어 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우리도 갈 길은 멀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칫 준비 없는 회동으로 북한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의 소리도 높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지낸 에반 메데이로스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가지고 놀더니 이제 트럼프 대통령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트럼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7년 출간된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이다. 책대로라면 그는 협상의 달인 아닌가. 지난 세월 미국의 외교적 실패 사례들을 정치가들이 바보스러웠다는 사실에서 찾는 트럼프다. 회담장 테이블에 햄버거가 올려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성사된다면 5월 회담은 '역사적 회담'이 될 것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