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12월 2일 아침,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했다.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데 따른 입장이었다. 그는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로 종결 사안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려 한다"며 "검찰의 태도는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소환요구 및 어떤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조사를 피했다.
검찰청사가 아닌 국립묘지에 들렀다, 그 길로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5촌 조카의 집에 머물던 전 전 대통령은 밤 11시께 잠시 나와 측근들과 친척, 지역민들에게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들어갔다. 한때 체포조의 진입이 시도됐으나 호위대가 대문을 굳게 닫고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자정을 넘어서도 대치가 계속됐다. 담장 위에서 '뻗치기' 취재를 하던 월간지 기자가 독백처럼 말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3일 새벽 5시께 의경들이 대문 앞에서 호송차까지 2열로 늘어섰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방으로 갔고, 잠시 뒤 전 전 대통령이 모습을 보였다. 검은색 외투에 중절모, 흰색 목도리 차림으로 '수고한다, 미안하다'며 일일이 악수한 뒤 문밖으로 나섰다. 호송차량은 5시간을 달려 안양교도소에 멈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5번째로 검찰 소환을 받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3대가 잇따라 불행한 처지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했다. 정치 보복이란 생각을 에둘러 전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평창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경기를 관람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경기를 보면서도 심경은 복잡했을 듯하다. 이 전 대통령은 "다만 바라는 것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상투적 발언이라지만 가장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