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난감한 질문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시란 무엇인가'도 그중 하나다.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답하기가 더 어렵다. 시인들에게 물어도 우물쭈물한다. 김광규 시인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을 목적으로 부르지 않는 마지막 노래", 강은교 시인은 "빈방에 꽂히는 햇빛", 허영자 시인은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자기 정화의 길"이라고 '시처럼' 대답했다. 한국에 있는 수 만명의 시인에게 물어도 그 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
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의 '시'는 따지고 보면 '시란 무엇인가'를 다룬 영화다. 60대 여주인공 미자의 시 쓰기와 성폭행 사건으로 연루된 손자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죄의식의 부재를 고발하지만 그 이면엔 아름다운 것, 잊혀지는 기억의 의미를 더듬으며 '시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이 감독도 "이 영화를 통해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로 다룰만큼 시는 그렇게 오묘하고 영롱한 존재다.
책을 읽지 않는 게 사회문제가 된 시대에서 그나마 시집의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 시집이 노출되면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우리의 독특한 문화 현상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 4화에 등장한 김용택 시인의 필사책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가 노출 즉시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게 그런 경우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시집 판매는 거의 매년 10~30%씩 증가했다. 2010년에 비하면 지난해 시집 판매량은 거의 두 배나 늘었다.
'시인의 연인'이란 제목으로 유·무명 시인들의 작품과 해설을 매주 경인일보에 연재했던 권성훈 평론가가 그 글을 한데 모아 '현대시 미학산책(경인엠앤비 刊)'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아무리 좋은 소설도 두 번 읽기가 쉽지 않다. 시는 수 백 번 읽을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 책을 읽으면 시가 우리 삶의 테두리 밖으로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 남의 좋은 시를 찾아 읽는 즐거움.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