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수는 현재 '죽은 나무' 재기 힘들듯
합리적 세력 뭉쳐 과거와 완전 결별해야
새 정강정책·인재로 재건위한 전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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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위원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6% 이상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총리 시절을 포함하면 무려 24년을 집권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에 독재자로 새겨넣은 박정희도 20년 집권에 이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국민 저항이 미미한 러시아의 정치 풍경은 낯설다. 중국도 개헌을 통해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가도를 열어 놓았다. 재외 중국인과 지식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있지만 저항 대신 조롱 수준으로 울분을 푸는 정도다. 푸틴과 시진핑의 장기집권 추구는 높은 경제 성장률과 초강대국 재건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두 사람의 강력한 지도력이 상승작용을 한 덕분이다.

다만 양국 지도자의 독재적 장기집권을 대중들이 무한정 인내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역사는 정답을 알고 있다. 문명국의 역사는 1인, 1당 독재정권이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순수한 권력의지가 시간에 의해 침식되면서 결국 자유의지로 무장한 대중에 의해 전복된 무수한 사례를 적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정신을 새 헌법 전문에 추가하자는 이유도 독재 필멸의 역사법칙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두 나라에 빗대는 것은 무리인 줄 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1년이 안됐고, 진보진영의 독주도 진영 자체의 도덕적 장점, 정치적 업적, 경제적 성취 보다는 보수진영의 한 없는 추락 덕분이라서다. 문제는 진보의 독주와 보수의 재기불능이라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진보의 자만과 보수의 자포자기 심리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진보의 장기집권을 위한 플랜과 전략이 거론되고, 진보성향의 누리꾼들은 진보의 장기집권을 위해 보수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공세의 전위가 된지 오래다. 반면 보수진영은 대의정당의 무기력과 유력 대변자가 고갈된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침묵하거나 냉소하며 가치 상실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서 1당 장기집권은 가능해도 1인 독재는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현재의 정치지형이 고착돼 진보 장기집권의 길이 열린다면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다. 자민당의 시선만으로 역사를 보고 민주의 가치를 전유하는 일본의 왜곡된 민주주의는 유의해야 할 선례다. 보수의 궤멸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가치 독점의 폐해를 낳고 있다. 현 정부가 노동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자본의 역할은 위축되고 있다. 노동권은 레프트윙이고 자본은 라이트윙이다. 한쪽 윙플레이어에 의지하면 슈팅 찬스는 절반으로 축소된다. 지금 한국엔 자본의 역할을 대변해 줄 보수가 없다. 4·5월 남·북, 미·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책변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과에 이를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결과에 대한 보수의 검증은 필요하다. 남북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진보와 보수의 교차 검증은 이성적인 문제 해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한쪽의 일방적 견해에 전체의 운명을 맡기는 건 위험하다. 그런데 자칭 안보 도사, 보수가 사라졌다.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한다면 어리석고 참담한 일이다. 한국 보수는 지금 죽은 나무다. 미투가 진보진영을 강타해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소원대로 민주당 후보들이 미투 범벅이 된다 해도 보수 진영의 재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망과 정책 그리고 인물에 이르기까지 자체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보수의 혼을 잠식하는 상황도 환장할 일이다. 결국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한다. 혼이 있는 합리적 보수세력이 뭉쳐 과거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고, 시대정신을 담은 새 정강정책을 성안하고, 시대정신의 어법을 구사할 새로운 인재를 향해 삼고초려해야 한다. 6·13 지방선거를 잔명을 이어가는 미시적 전술이 아니라 보수 재건의 거시 전략의 수순으로 활용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건강한 보수의 재건은 건강한 진보와 대한민국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