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남산 능선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농도 미세먼지가 자욱한 26일 시민들의 표정은 잿빛 하늘만큼이나 답답해 보였다.
이날 오전 출근 시간 서울 종로구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한 시민이 하차하자마자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왕십리역을 빠져나오는 시민 절반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직장인들은 조금이라도 미세먼지를 덜 마시려고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했다.
평소 지하철을 타기 전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서울대입구역 근처 골목길에서는 이날은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직장인 박 모(29) 씨는 "미세먼지가 재앙 수준으로 방독면이 필요할 정도"라며 "흡사 광부가 된 것 같다. 시민들에게 마스크 쓰라고 강조하기 전 정부가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북구에 사는 전 모(35) 씨는 두 달 전 박스째 사놓은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들고 출근길에 나섰다. 전 씨는 "한동안 잠잠하던 미세먼지가 다시 기승을 부려서 눈과 목이 더 아픈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구 모(36) 씨는 "외출을 자제하라고만 하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강제적으로 외출 금지를 하든지 공무원 휴업을 지시하든지 해야 한다"면서 "미세먼지가 매년 심해지고 있는데 왜 해결을 못 하는지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미처 마스크를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급한 대로 '방한용' 마스크를 쓰거나 머플러로 코와 입 주변을 막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종로의 한 보험사에서 일하는 A 씨는 출근길에 기자를 만나 "집에 마스크를 사놓고도 깜박하고 두고 나왔다"면서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를 둔 가정은 아이에게 쓰기 싫어하는 마스크를 씌우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6살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우느라 출근이 늦어졌다는 김 모(34) 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주말 내내 집에서 '셀프 감금' 됐다"면서 "아이가 아침마다 언제 나가 놀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면서 답답해했다.
환경부와 서울시·인천시·경기도는 두 달여 만에 이날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했다. 저감조치에 따라 차량 2부제가 시행되면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는 짝수 번호 차량만 출근이 가능했다.
서울청사관리소 직원이 출입구에서 출근 차량의 번호판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홀수 번호 차량은 "들어가실 수 없으니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시라"며 돌려보냈다.
이 직원은 "오전 6시부터 단속을 시작했는데, 오전 8시 30분까지 20대가량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번에는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을 두고 아쉬워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성북구에 사는 전 모(35) 씨는 "무료 대중교통 정책을 철회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번에는 무료가 아니라고 하니 '받았다 뺏긴'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