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순수대통령제로 변화 고민 필요
여야, 의미있는 권력분산 위한 정치력 절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은 최소정의적 민주주의를 여는 단초로서 주기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절차적'인 민주화였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개헌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우선 노동과 복지 등에서 사회적 평등을 지향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나가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최소정의적 접근에서의 민주화는 실질적 민주화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이를 통한 평등의 실현 등의 실질적 내용의 민주주의를 위하여는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절실하였다. 그러나 제도화는 지체되었다. 제도화의 요체는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의 말처럼 민주화와 헌법화이다.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참여·대표·책임의 구조를 통한 사회적 갈등과 균열의 반영이다. 헌법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이는 결국 정치의 문제로 집약된다. 따라서 이번 개헌에서 평등의 실현이라는 가치의 구현은 권력구조의 변경 못지 않게 중요하다.
둘째, 헌법 개정의 핵심은 권력구조다. 한국 대통령제는 내각제적 요소와 절충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의 겸임, 정부의 예산편성권 등의 내각제적 요소가 대통령의 권한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대통령제로의 변화를 고민해 봄직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이러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결국 권력분산의 당위를 여하히 충족시키느냐가 개헌의 핵심이다.
정당으로 조직되고 대표되는 정치과정의 활성화, 즉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확대되고 이를 토대로 사회의 균열과 갈등이 정당체제에 반영되는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헌법이 제정되었던 1948년은 극한적 좌우익의 대립으로 혼돈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권위주의 정치와 군부독재의 시대가 더 길었던 1950년대부터 1987년 민주화에 이르는 기간까지 자유민주주의적 헌법은 정치현실과 크나 큰 간극을 초래했다. 이는 헌법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을 낳았고, 헌법은 현실과 유리된 상징적 선언에 머물은 측면이 강했다. 1980년 5공화국 헌법이나 1972년의 유신헌법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선언에서 헌법과 정치현실 사이의 극단적 괴리를 발견할 수 있다.
기본권, 지방분권 조항, 권력분산 등의 조항이 국민의 광범한 참여와 논의하에 이루어지느냐의 여부는 그래서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치사회의 구성원에 의한 광범위한 동의와 참여에 입각하지 않은 헌법이 실질적 규정력과 효과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의 운명을 예단하기 어렵다. 권력구조에서 여야의 생각의 차이는 절충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실시가 가능하려면 5월 4일까지 여야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 정부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지면 부결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월등히 높다. 집권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이 개헌을 촉발시킬 촉매제의 역할을 넘어 개헌 동력 자체를 무산시키지 않도록 여야 모두 개헌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시기는 그 다음의 문제다. 실질적 민주주의와 의미있는 권력분산을 위해 여야의 정치력이 절실하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