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라면
아무리 좋은 사주라고 한들
비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
반복되는 역대 대통령 불행처럼
나쁜 사주 만들지 않으려면
권한 줄이는 헌법개정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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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등에 업힌 아기를 본 노인이 "아이구, 그 녀석 대통령감일세"라고 하면 옛날 엄마들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대통령이 된다는 데 싫어할 엄마는 없을 것이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유모차에 애를 태우고 가는데 누군가 "대통령감"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엄마들은 눈을 흘기며, 화부터 낸다고 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을 떠올리면 웃음은커녕 우울하다 못해 슬퍼지려고 한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이국만리 머나먼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지금은 그 누구도 초대 대통령의 유해를 이 땅에 모셔오자는 사람이 없다.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잊힌 인물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믿었던 부하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친구 노태우 대통령은 내란 음모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을뿐더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했다. 그래서 어느 방송에선 그냥 '전두환씨 노태우씨'라고 불리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시절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감옥에 간 자식 때문에 편하게 눈을 붙이지 못하고 긴 밤을 뒤척여야 했다. 민주화 동지였지만 생전에 둘은 갈등하면서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허공에 육신을 던짐으로써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지금 그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아이가 대통령이 될 상이나 사주를 갖고 있다면 좋아할 부모는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할 지경이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신문이 '오늘의 운세'를 싣는다. 우리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독자 중 기독교 신자도 많을텐데 그런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날 신문 기사중 '오늘의 운세'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공표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이 읽힌다.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인 심심풀이를 독자들이 정치 사회면 톱기사 보다 더 열심히 찾아 읽는 이유를 단지 '로또'를 사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원래 그런데 관심이 많다. 신년호 특집이나 큰 선거를 앞두고 출마자 관상과 사주를 경쟁하듯 싣는 것도 이런 '오늘의 운세'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많이 읽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후보들의 사주는 여기저기 살이 더 붙어서 '카더라 통신'이라는 바람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흘러다닌다. "OOO 역술인이 그러는데 이번 대통령은 OOO가 된다더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주뿐인가.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좋은 집터를 찾아서 집을 옮긴 것이 공공연하게 기사화되기도 한다. 옛날 자료를 찾아서 일일이 대통령의 사주를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모두 용비어천가급 찬사를 남발했지, "나쁜 사주"라고 말한 역술인은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선자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 것은 그냥 의례적인 공치사였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주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쁜 사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역술인들을 만나 얘길 들어 보면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좋은 사주를 타고 나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대통령 앞에 늘 붙어다닌 '제왕적'이라는 그것이 대통령의 사주를 꼬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현행 무소불위 제왕적 대통령제라면 아무리 좋은 사주를 받고 태어나 대통령이 된다 한들, 비극적인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현 대통령제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비극적 대통령을 만드는 주범이다. 반복되는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더 이상 사주 탓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 사주'를 나쁜 사주로 만들지 않으려면 대통령 권한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헌법개정안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한 명쯤은 가져도 될 때가 됐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