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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크고 작은 권력과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과 칭찬의 상투적인 비유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자주 인용된다. 단원을 일사불란하게 장악하고 차이나는 연주능력을 조율해 자신만의 색을 가진 화음을 실현하는 지휘자를 이상적인 리더십의 전형으로 인식한 덕이다. 실제로 지휘자와 단원이 따로인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은 끔찍하다. 갈등의 확대재생산이 특기인 한국 정치가 지휘자도 악보도 없는 망가진 오케스트라로 조롱받은지 오래거니와, 리더십이 실종된 한국 보수정당의 현실은 이에 꼭 들어맞는 형국 아닌가.

훌륭한 지휘자의 리더십에도 유형은 있다.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빈 메타는 단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유명했다. 지난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리카르도 무티는 강력한 장악력으로 단원들을 지치게 한 모양이다. 2005년 라 스칼라 오페라 단원들이 "당신은 위대한 지휘자"라면서도 자신들을 파트너가 아닌 악기로 사용한다며 사임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들도 독보적 카리스마로 베를린 필의 종신 독재자로 유명했던 카라얀의 명성엔 못미친다. 하지만 지휘계의 황제로 칭송받던 그도 30년 전횡에 지친 단원들의 반발에 몰려 물러났으니 독재의 말로는 늘 이렇게 처연하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7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를 영입했다. 베버와 바그너가 활약했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했을 정도로 오페라에 정통한 인물이다.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경기 필은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젊은 오케스트라이고, 나에게도 굉장한 기회"라고 의욕을 보였다. 창단 이후 경기 필은 관립의 한계와 열악한 공연시설, 취약한 클래식 저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다. 특히 젊은 여성지휘자 성시연의 활약과 무티와의 협연으로 국내외 공연계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경기 필이 자네티를 통해 전통과 현대, 장르를 종합해 특별한 개성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물론 행정편의적인 지원에 머물러 있는 관립 운영체제의 혁신도 필수적이다. 서울시향의 정명훈 사태에서 보듯, 경영과 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하면 불협화음으로 번진다. 경기 필의 새로운 하모니를 기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