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하루가 즐겁다. 골치 아픈 정치, 앞이 안 보이는 복잡한 외교, 날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경제. 하지만 그를 보면 이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이런 타자 한명 쯤 갖고 싶었다. 강백호. 지금 프로야구계는 벼락같이 등장한 '괴물 신인'에 들끓고 있다.
그제 밤 수원이 들썩거렸다. 수원 kt위즈 파크에서 열린 두산베어스와의 2차전. kt위즈는 1회, 3회 각각 4점을 허용하면서 8실점. 상대가 누군가. 최강 두산베어스다. 경기는 끝난거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강백호가 있었다. 강백호는 장원준의 135㎞ 슬라이더를 우측 담장을 넘겨 가라앉은 분위기를 되살렸다. 경기는 20대8로 뒤집혔다. 중계 캐스터는 "진짜가 나타났다!"고 탄성을 질렀다. 그날 밤 스포츠 채널 프로야구 하이라이트에 출연한 해설자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진짜가 나타났다"고 흥분했다.
홈런 순위 1위는 둘째 치고 그가 날린 홈런 4개 중 3개가 기아의 헥터, 두산의 린드블럼, 장원준 등 팀의 에이스 투수들로부터 얻어낸 것이다. 헥터는 지난해 20승을 올린 투수다. 린드블럼은 2015년 210이닝을 소화한 리그 대표의 '이닝이터' 투수. 장원준은' 8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거둔 투수다. 강백호는 겨우 19세의 신인일 뿐이다. 신인드래프트에서 계약금 3억원에 SK에 1차 지명된 최정도 데뷔 해인 2006년 홈런 12개를 쏘아 올렸다. 당시 최정의 나이도 19세였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10대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김재현(21개), 이승엽(13개), 김태균(20개), 최정 4명밖에 없다. 그런데 강백호는 8경기에서 4개의 홈런을 때렸다.
강백호는 수원 kt위즈 소속이지만 이와 무관하게 전국구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19세 괴물을 보러 관중들이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자칫 자만해 질 수도 있다. 선인들은 자신의 덕을 닦는데 게을리 하지 말라는 의미로 '소년등과(少年登科)'를 언급했다. 일찍 성취하게 되면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른다. 삶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지금 강백호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겸손이다. 그리고 부상에 유의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