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국민 생활은 지금의 아프리카 최빈국만도 못한 처참한 처지에 헐벗고 굶주림 속에 미국으로부터 무상원조에 의지해 가며 가난과 궁핍함은 면할 날이 없고 해마다 반복되는 가난 속에 힘없는 약소국가의 처절했던 때는 요즈음 젊은이들이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의 극한의 어려운 삶을 살았던 시절이다.
6.25전쟁은 유엔 16개국이 개입되면서 공산화될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어렵게 나라를 찾고 지금의 분단국가로라도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준 은혜의 보답차원으로 월남전에 파병되어 자유수호와 국위선양, 외화획득을 위해 최악의 파병 조건·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지 45년이 되었다.
그 당시 월남전의 특징으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르는 전쟁으로 양민인지 적인지 군인인지 표시가 없고 적 지역과 아군 지역을 구분할 수 없는 전쟁으로 일정한 전선이 따로 없이 영토를 뺏기고 빼앗아 점령하는 전쟁이 아닌 불공정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또 전쟁이란 살상무기를 가지고 적을 먼저 발견하고 먼저 쏘아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하는 특성 때문에 월남전에서의 적이라고 하는 것은 지역게릴라들로 민간인이며 무기를 휴대하고 있으면 적이 되고 무기를 놓아버리면 양민의 신분으로 변하고, 어느 지역이 적군의 지역이고 어느 지역이 아군의 지역이라는 영토분쟁이 없는 전쟁 속에 오인사격으로 양민을 죽일 수도 있었고 무기만 안 들었지 실제는 양민이 아닌 적인데도 죽였다면 이 또한 양민을 죽였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마을은 완전적색마을인 곳이 있다. 적들에게 넘나들며 식량과 무기를 공급하는데도 양민의 행세를 하고 생활하기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군부대 주위에 적의 활동을 저지하고 접근 방지를 위한 매복 작전을 나아가면 적색마을에서 적색분자들이 매복지점과 시간을 지역 게릴라 베트콩들에게 정보를 알려 한국군의 매복 작전을 헛되게 한다든지 매복 후 철수 시 역 매복에 걸려 상당한 한국군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이 모두 양민이 아닌 적색분자들의 소행이다. 양민학살의 오해가 있을 듯싶어 언제나 작전하기 전에 사전 지역관할 행정책임자에게 작전을 해야 하는 불가피성을 알리고, 양민은 모두 작전 지역에서 나오게 한 후 작전에 돌입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사냥꾼이 사람을 야생동물로 착각하고 오인사격을 해 인명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듯이 똑같은 사람인데 표시가 없이 누가 적이고 양민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구분하고 가려가며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6.25사변 때도 오폭에 의한 양민 학살이 있었으며 아군끼리도 서로 오인사격을 해서 사상자를 내는 경우도 있다. 포 지원요청을 하게 되는 경우 좌표를 잘못 부른다든지 포 조작을 잘못했다든지 방위각을 잘못 측정하였다든지 하면 적진지에 떨어져야 할 포탄이 아군지역에도 떨어지고 양민지역에도 떨어지게 되면 이 또한 양민학살로 몰아간다.
공군지원 요청을 하면 역시 똑같은 현상이 생겨 엉뚱한 지역에 포탄을 떨어뜨리면 이것도 의도된 양민 학살로 몰아 갈 수가 있다. 세계적으로 부비트랩 전술이 뛰어난 민족이 베트공 민족해방 전선 대원들로 기만에 의한 살상방법으로 호기심 나는 물건(카메라·쌍안경 등)을 이용 유인하여 사살하는 방법, 주로 한국군이 물자보급을 위해 다니는 통로나 보급로에 함정을 파 죽창으로 찔려 죽게 하고 지뢰나 폭발물을 매설해서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전술 등 이 모든 것이 표시 없는 적의 전략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아군에게 피해를 줬다는 이유로 보복성 양민 학살의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적이 아군을 죽이는 경우, 아군이 적을 죽이는 경우, 아군이 양민을 죽이는 경우, 양민이 아군을 죽이는 경우,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경우와 같이 다양한 상황과 방법 형태로 사람을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월남 정글작전은 적들은 표시가 없을뿐더러 숨어서 우리를 항시 보고 있으며 한국군은 이런 적을 찾아다니는 입장으로 한국군이 불리한 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본 전쟁이다. 게릴라들은 화력과 장비가 열악했고 군수 지원이 안되어 야음을 틈타 은밀히 침투 기습타격으로 피해를 입히는 전술을 편다. 하지만 전투장비가 모두 우수하고 제공권을 갖고 있으며 군수지원 물자공급이 원활한 조건을 갖고도 패한 전쟁이 되었고 상당기간을 계속한 전쟁이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전쟁으로 전사자 피해만 5천99명이 되었고 상당한 부상자를 속출한 전쟁이다.
"100명의 적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구하라"고 하는 주월 사령관의 작전개념을 갖고 전쟁에 임했던 한국군이었고, 전쟁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상당한 대민 지원으로 생활필수품 지원·의료지원 농촌지원 공공시설 건축 등 다양한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전의 목적 달성과 효과가 미진한 가운데 철수를 하게 되었다.
만약에 남베트남이 통일을 했다면 구수정이가 주장하는 논리는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과는 무관하게 양민을 9천명이나 사살했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거짓으로 제시되었거나 인위적으로 없었던 사실을 있었던 것처럼 물적 인적 거짓증거를 내세워 우리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면 전사자들이 원통해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보호받고 교육받고 성장의 혜택을 유복하게 받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전쟁의 숨 막히는 고통과 위험함을 알고 말하는 것인가. 극한의 상황과 참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은 물이 없어 오줌을 받아먹어야 했고 군화를 작전이 끝날 때까지 한 달이 넘도록 벗어 본적이 없다. 또 잠을 제대로 누워서 자본적 없이 참호 안에서 쪼그리고 잠복근무를 연속적으로 하며 작전에 임했고 각종 날파리·독충·모기·지네·산짐승을 피하기 위해 기피제를 사용하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 치러낸 전쟁이다.
지역게릴라들이 있는 곳에 고엽제를 살포하여 거점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아군이 그 지역에 들어가 작전을 하다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 피해자가 수만 명이 된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고 전쟁 다큐멘터리 방송으로도 방영이 된 것을 보았다면 참혹함 때문에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전쟁으로 빚어진 잘못된 정보와 오인사격에 의해 발생한 살상인데 적이 아닌 양민을 죽이기 위한 의도된 학살로 몰아가는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월남전으로 인해 한국경제가 발전했고 남북한 간 전쟁억지의 효과가 있었고 그 바탕 위에 윤택한 삶을 살아온 당신도 은혜를 입은 사실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할 내 나라 내 동포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이재수 월남전참전자회 화성시지회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