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강화~북한 도로 건설
의미·효과 제대로 살리려면
남북 경제협력특구도 조성돼야
덧붙여 물길까지 뚫리게 되면
유수한 관광자원도 빛 볼 수 있어


경제전망대 조승헌2
조승헌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44번 국도는 한가로웠다. 인제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차량이 이제는 서울~양양 고속도로로 다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춘천, 설악산과 통하던 거의 유일했던 44번. 길가에 있던 상가는 문을 닫았거나 한적하다. 오토바이족을 위한 카페가 드문드문 눈에 들어올 뿐이다.

길은 돈이다. 차와 사람은 길과 신호를 따라 정해진 방향으로 옮겨 다닌다. 역세권은 돈이 머무는 주차장 같은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거래가 많아지고 있지만 지역경제와 현장의 실물경제 맥락에서는 길을 매개로 한 돈의 흐름을 간파하는 것이 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에 관건이 될 수 있다.

수도권으로 돈이 들어오는 대표적인 길은 KTX다. 예를 들어, 대구시민이 KTX를 타고 명동이나 강남에서 쇼핑을 하는 경우이다. ITX가 개통되어 춘천의 숙박업소와 입시학원이 힘들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강남행 광역버스 노선에 실려 오는 돈은 지방 서비스업 경기를 휘두를 만할 것이다. 경기, 인천 지역 대학들과 강남을 연결하는 수십 개에 달하는 대중교통 노선은 지역대학 상가 매출을 줄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돈이 들어오는 대표적인 길은 관광도로이다. 헤이리행 자유로, 건설 중인 서울~강화 고속도로는 해당 지역으로 돈이 들어오는데 한몫을 할 것이다.

고속도로나 열차같이 출발점과 도착점 중심의 길은 지역경제를 파편화하고 양극화하는데 일조할 경향이 높다. 기차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모든 돈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제외하고는 도착지에서 쓰여진다. 반면에 국도 이용자는 중간 중간 밥, 차, 지역농산물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출발할 때 100만큼의 돈은 기차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종착지에 가서도 거의 100이 될 것이지만, 국도를 이용한다면 종착지에서 소비되는 액수는 80이나 90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소비자의 판단인 듯하지만, 길이라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은 전적으로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모르쇠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완공되자 인제와 백담사 권역 44번 국도의 상권이 반 토막 아래로 떨어졌지만, 종착지인 속초·강릉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강원과 경기 전방 군인의 외출, 외박구역을 제한하고 있는 위수지역 폐지 이슈가 뜨거운 것도 국가가 군인들의 도로통행권을 어떻게 현명하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로 볼 수 있겠다.

길은 일단 넓고, 빠르고,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당연하다는 게 요즘 세상이다. 하지만 길 때문에 누군가가 울거나 터전을 빼앗기거나 하루아침에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사정은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재수로 돌리는 게 또한 세상인심이다. 국가는 길에 딸린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세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사람과 돈의 흐름이 많다 하여 길을 내든가, 길을 내면 사람과 돈이 올 것이라 하는 단순한 논리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사람과 돈의 흐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길이니 길은 곧 정치와 삶의 알맹이라 할 수 있는 터.

최근 영종도에서 강화를 거쳐 북한까지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하자는 제안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이 길이 가진 의미와 효과를 제대로 살리려면 남북경제협력을 구현하는 경제협력특구를 조성하는 계획이 함께 성사되어야만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덧붙여 남북공동어로, 한강하구 공동이용으로 물길까지 뚫리면 강화도, 석모도, 교동의 유수한 관광자원이 빛을 보는 부수적인 효과도 이어질 것이다.

이번 일이 경제논리나 인천이라는 공간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사회적, 국가적 수준의 의사결정 차원에서 추진될 때, 이 길에 담긴 참된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나타나고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 남과 북 사이에 사람과 돈이 오가고 마음이 평안하고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호혜로운 길. 그런 길을 만들어 내는 시대적 노력과 지혜를 꿈꾸어본다.

/조승헌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