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교감
최동호 용인 성복고 교감
"버스 안에서 친구가 신경질적인 얼굴로 쳐다봐서 싸웠어요.", "선생님의 갑질에 화가 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일부 학생들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이들이 쓴 성찰지를 읽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친구의 거슬린 표정이 기분 나빠 주먹부터 휘두르고, 심지어 선생님의 지도를 학생에 대한 '갑질'로 받아들이는 교육 현실이라니.

비근한 예로, 모든 학교수업이 토의·토론으로 진행되는 스위스는 쟁점 발생 시 갈등 조율을 위해 한 해 50회 이상의 상시 토론회를 열어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 유럽의 골칫덩이였던 독일도 생각을 묻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독일이 오늘날 유럽의 맹주로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느리지만 깊게 사고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합의할 수 있는 힘을 지향한 학교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명문대 최상위 학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받는 비결을 물었더니 '교수의 말을 전부 받아 적어야 한다.'는 응답이 근 90%에 달했다고 한다. 교수의 강의를 토씨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느라 손가락 사이에 괭이가 박혔다는 학생들에게서 어떻게 비판적 사고력과 새로운 자기 관점의 창의적 사고력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배울수록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학교교육의 모순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의 지식은 '나 홀로 천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하며 생각을 개방하고 토론함으로써 나오는 지혜(智慧)'라는 점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친구의 생각을 듣지도 않고 주먹부터 휘두르는 욱하는 성질을 걷어내는 이성적인 의사소통법을 가르쳐야 한다. 교사 훈육에까지 갑질이라는 반응의 서툰 감정 발산을 순화시킬 수 있는 교육, 그동안 경기혁신교육이 공들여왔던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이다. 

 

/최동호 용인 성복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