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어떤 총성도 들리지 않았다.그렇다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총소리 한방 없이, 스텔스 전폭기 처럼 조용하고 은밀하게 세계 경제 여기 저기에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무역전쟁을 '무기 없는 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다.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붕괴하자 당시 다수당이던 공화당은 수입품에 평균 20%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럼에도 경제는 더 악화됐다. 다른 나라들도 앞다퉈 보복관세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1차대전 배상금과 대공황으로 국가 파산 직전까지 몰린 독일은 예정대로 군국화의 길로 나섰다. 지역마다 내전, 국지전이 일어나더니 2차대전으로 확대됐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해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균열조짐을 보일때 예견됐다. 하나의 경제권이라고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두 나라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멕시코산 제품에 수입 관세를 20% 물리고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을 때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1차 점령지가 멕시코라면, 최종 상륙지는 결국 중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불행하게 예상은 적중했다.
미·중 무역 충돌로 세계 경제는 패닉에 빠졌다. 대공황 이후 70여 년간 유지해 왔던 자유무역질서에도 심각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교역의 담을 높일 수 있다는 배타주의가 각국으로 확산 되고 있어 걱정은 더 크다.
문제는 세계 6위 수출대국인 우리다. 백악관은 중국과의 전쟁에 동맹국들과 공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 역시 미국 편에 서도록 압박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심사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서글픈 숙명 앞에서 또 다시 방황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대책없이 전쟁에 임하면 백전백패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치밀하고 전략적인, 만반의 대책을 마련해 두고 있는가. 그게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