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제품들이 전 세계 판매장에서 찬밥 신세를 당한 적이 있었다. 세일을 해도 팔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품의 질이 형편없었던 게 문제였다. 팔리지 않는 제품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를 본 이건희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1993년 삼성 이 회장은 LA, 오사카, 도쿄, 런던에서 장장 4개월에 걸쳐 1천800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신경영을 설파하며 다녔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혁명적인 연설을 한 후 '양보다는 질'을 우선하는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단행했다.
1995년 무리하게 출시를 서둘렀던 애니콜 휴대폰의 불량률이 12%로 치솟자 구미공장에서 15만대를 쌓아놓고 불태웠다.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 이런 과정을 겪고 삼성은 IMF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 후 삼성 특검과 심근경색으로 이 회장이 쓰러지면서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맞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과 석방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 삼성이 최근 삼성전자와 삼성증권 등에서 사고가 잇따르면서 굴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9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의 정전사고, 같은 달 19일 삼성물산이 시공한 평택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 추락 사망 사고, 이달 6일에는 삼성증권의 100조원대 주식 배당 사고 등 한 달 사이 큰 사고 세 건이 발생했다. 여기에 노동조합 와해 의혹, 반도체공장 환경보고서 공개 논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이 같은 일들은 미래전략실 해체가 결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삼성 특유의 관리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도금지' 지시를 받고도 잘 못 들어온 주식을 버젓이 팔아치우는 삼성증권 임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를 컨트롤타워 부재 때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로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는 삼성그룹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자칫 삼성병원에서 발생한 메르스 같은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삼성이 이 굴욕을 떨쳐 내려면 솔직한 반성과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때처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