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직 대통령, '이념' 제대로 알지 못해
하릴없는 지식인들의 외침으로 인식하고
공산주의자 부의 평등 '경제민주화'로 공약
권력 놓고 처절하게 다투다 결국 함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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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전 정권과 전전 정권의 지도자들이 함께 감옥에 갇힌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심 공판에서 24년 징역과 180억원 벌금을 선고받았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이 나라는 더 깊이 분열되고 침체될 것이다.

"오늘 이 순간을 가장 간담 서늘하게 봐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야당 대변인의 논평이 섬뜩하다.

두 지도자들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보수 세력 전체를 몰락으로 이끌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높이고 지키는 보수 세력은 힘을 잃었다. '어찌하다,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물음이 도처에서 들린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그 괴로운 일을 정직하게 수행해야, 보수 세력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두 지도자의 몰락엔 물론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그러나 우파 정권이 좌파 정권으로 바뀐 것이 몰락의 계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역시 근본적 요인은 이념적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이념적 분열이 깊고 북한의 이념적 공세에 오랫동안 노출된 우리 사회에선 이념의 영향이 유난히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두 지도자들은 이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런 이념적 무지가 끝내 화를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을 넘어서 실용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념을 철 지난 것으로, 하릴없는 지식인들이 들먹이는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버릴 수 있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기업인으로 성공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기회를 준 자유시장에 대한 고마움도, 재산권의 소중함도, 시장과 재산권을 거센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지키려 애써온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존재도 몰랐다는 얘기다. 평생 '이념적 무임승차자'로 살아왔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로서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제민주화는 원래 19세기 후반에 영국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목표인 '부의 평등'을 가리킨 말이었다. 긴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 그 개념은 시장경제에 적대적인 특질들을 많이 지녔다. 그것이 슬그머니 우리 헌법에 들어가면서, 갖가지 문제들을 일으켰다. 그래서 그것은 자유주의 정당의 후보로선 도저히 내걸 수 없는 공약이었다. 선거에 이기려는 전략이었다는 변명이 나왔지만, 박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그 공약을 실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 대통령은 사회가 이념적으로 흔들릴 때 나라를 이끌었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는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 약화되었다.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이념과 역사를 폄훼하는 교과서들을 좌파 교사들로부터 배운 것이 특히 큰 문제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굵직한 국가 사업들을 챙기는 '사업책임자(project manager)'로 인식했다. 위험하게 기울어진 이념적 지형을 바로잡을 기회는 그렇게 지나갔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경제가 어려워져서 정권이 동력을 잃은 뒤에야 이념적 위험을 인식했다. 그러나 '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역사교과서 파동'에서 보듯, 너무 서툴러서 일을 그르쳤다.

이념에 무지했으므로, 두 지도자들은 이념적 적대 세력의 위협에 둔감했다. 결코 타협하지 않을 적군이 성을 에워싸기 시작해도, 궁정에서 권력을 놓고 처절하게 다투었다.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보인 '아름다운 승복'을 이 대통령은 국회의원 공천에서 '친박계 학살'로 갚았다. 박 대통령도 보복에 나섰고 결국 함께 몰락했다. 박 대통령의 몰락에 대해 이 대통령이 보인 반응은 자신에게 곧 닥칠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이 대통령이 '이념을 넘어서 실용으로'라는 구호를 내건 순간, 보수 세력의 몰락은 시작됐다. 이제 보수 세력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념에 대한 충성심이 깊은 지도자들을 뽑을 수 있는가? 우리가 뽑은 지도자가 이념에 소홀할 때 바로 잡을 수 있는가?' 그런 성찰이 나온 뒤에야, 보수 세력이 활기를 되찾을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