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사를 뒤집으면 '인디언 멸망사'라는 말이 있다. 아마 한국사도 뒤집으면 '대학입시변천사'쯤 될 것이다. 대학진학률 90%가 보여주듯 대학입시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언제나 늘 뜨겁다. '맹모 삼천지교'를 앞세우며 옥답을 팔아 자식을 키운 우리 부모들이다. 이 뿐인가. '교육 백년지대계'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아는 상식적인 용어가 됐다.
1954년 대입 '국가 연합고사'가 치러졌다. 첫 국가시험이라 느슨했는지 커닝 소동이 터지면서 시험은 무효처리됐다. 1968년 사립대학 입학부정이 문제가 되자 대입 4개월을 앞두고 '대학예비고사' 실시를 발표했다. 그래서 69학번이 날벼락을 맞았다. 군이 정권을 잡은 1980년 7월 30일. 국보위는 과외폐지를 골자로 하는 '7·30 조치'를 발표했다. 1981년 졸업정원제와 내신이 도입됐다. 1982년 예비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실시됐다. 학력고사는 1994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변경됐다.
대학입시변천사를 논할 때, 단연 으뜸은 김대중 정부 때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일 것이다. 1998년 10월 이 장관은 야간 자율학습과 월간 모의고사를 폐지하며 '당구 하나만 잘 쳐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대학 무시험전형' 확대를 선언했다. 입시지옥에 시달렸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첫 적용인 2002학년도 수능생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등 슬프고 끔찍한 사고를 보며 자란 1983년생 '이해찬 세대'는 역대 최고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들고 멘붕에 빠졌다. 그 후 '이해찬 세대'라는 고유명사는 진보정권 집권 기간 내내 '무능 정권'을 상징하는 조롱의 대상으로 쓰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4년 노무현정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내놓은 EBS와 수능 연계로 학생들은 내신, 수능, 논술을 모두 챙겨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겪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거기에 '학생부 종합전형'까지 더해졌다. 이렇게 해방 이후 대학입시는 16번 바뀌었다.
교육부가 그제 2022학년도 입시안을 공개했다. 반응이 싸늘하다. 잡탕 개편안이란 비난에 직면하자 김상곤 장관은 '열린안'이라고 우긴다. 교육부의 무능이 또다시 드러났다. 대학입시만 생각하면 머리와 가슴이 아프다. 정말 어쩌면 좋은가.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