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은 철저하고 빈틈이 없는 성격이었다. 엄격한 유교적 가풍을 중시했다. 웬만해선 자식들과 겸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화목'을 중시했다. 새벽 5시가 되면 청운동 자택에서 자식들과 아침 식사를 같이했다. 연암(蓮庵) 구인회 LG 창업주는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았다. '신뢰'가 경영의 최고 미덕이라고 여겼다. 공동창업주였던 허준구 회장과 그룹이 분리될 때 단 한마디의 잡음이 들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재벌'은 여전히 애증의 대상이지만, 이렇듯 재벌 1세대들의 뚜렷한 경영철학은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 되는 밑거름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56년 10월 36세 한진상사 조중훈 대표는 '책임제 수송계약'을 들고 미군 고위층을 찾아갔다. 운송 도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이유 불문하고 전액 변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미군용 캔맥주 운송을 맡게 됐다. 계약기간 6개월. 대금 7만 달러. 조 사장의 좌우명은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은 나중에도 얻기 힘들다"였다. '신용'을 최우선 덕목으로 휴일도 없이 수송업무를 강행했다. 단 한 번의 계약 위반도 없었다고 한다. 그때 얻은 신용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지금의 한진그룹이 됐다. 생전에 정석(靜石) 조중훈 창업주는 그 어느 그룹 회장보다 직원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 존경을 받았다.
조양호 현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갑질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회의 도중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나이 많은 간부급 직원에게 막말을 해왔다고 한다. 조 전무는 2014년 '땅콩 회항사건'으로 사회를 들끓게 한 조현아 칼 호텔 네트워크 사장의 친여동생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없는 자매(姉妹)다. 인성이 이런데 경영능력이 있을 리 없다. 갑질을 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함량 미달임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 자매들이 정석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자질이 안되는 총수 자녀들은 경영에서 퇴출해야 한다. 철없는 재벌 3세로 인해 민심이 또다시 들끓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