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면초(七面草)는 칠면조의 얼굴처럼 붉게 변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도 토박이 노인들은 칠면초를 '갱징이 풀'이라고 부른다. 꽃인지 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 풀은 밀물에 묻히면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기자 초년병 때 만난 갑곶 노인들은 소나 말도 이 풀만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갱징이 풀'이고, 소나 말이 그 풀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
이야기는 병자호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 대군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월곶 성동 나루터에는 강화도로 들어가려는 피난민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강을 건너게 해 줄 배가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가마가 도착했다. 강화도 검찰사로 임명을 받은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의 어머니와 아내가 탄 가마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척의 배가 나타나 발버둥을 치는 피난민들은 외면한 채 두 여인과 식솔, 50개나 되는 재물 궤짝만 싣고 강을 건너갔다.
그리고 곧 오랑캐가 나루터에 들이닥쳤다. 후대는 그 모습을 "순식간에 거의 다 채고 밟히고 혹은 끌려가고 혹은 바다에 빠져 죽고 하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과 같았으니 그 참혹함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이 펄에서 죽어가면서, 또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경징아! 경징아! "부르며 저주했다고 한다. 그때 흘린 원한의 피가 붉은 펄 꽃으로 피었다는 것이다. 그게 말과 소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갱징이 풀'이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해안선 길이 99㎞로 세계적인 갯벌과 천연기념물 205-1호 저어새가 서식하는 곳. 매화마름, 갱징이 풀 등 56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강화도를 소개한 '강화도의 나무와 풀' '강화도 지오그래피'(작가정신 刊) 두 권의 책이 동시 출간됐다. 강화도가 '2018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가 무심했고 늘 옆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른 탓이다. 따지고 보면 제주도보다 더 아름답고, 서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 강화도다. 책의 출간이 잊고 있던 강화도를 상기시킨다. 이번 주말엔 강화도에 다녀올 생각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