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일 벌어졌을때 신고하고
도움 요청할 수 있게 최선 다해야
부족한 부분 채우는 도구로 보는
정부·지자체 근본적 인식 전환 필수
한편으로 예전에 들었던 한 이주여성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 10년 넘게 살고 있던 이 이주여성은 "한국에는 남성, 여성 그리고 이주여성이 있어요" 라고 한탄 어린 말을 했다. 아마도 한국사회에서는 이주여성이 한국인 여성보다도 더욱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미투운동이 지속되면서 이주여성들에 대한 관심도 평소보다 더욱 커지고 있으며 곳곳에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이주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지난 3월 9일에는 국회에서 이주여성들의 미투사례 발표가 있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한 이주여성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성폭행 당했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사업장 변경에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토로했다. 더욱이 성폭력이 발생해도 한국 실정에 어둡고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이주여성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신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체류신분이 불안정해지면 신고를 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이를 악용한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실제로 2017년 11월 경기도 안성의 한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던 한 태국인 여성은 공장의 관리자로부터 "불법체류 단속이 있으니, 자신의 차에 타라"는 이야기를 듣고 동승했다가 경기도의 한 야산으로 끌려가 성폭행 시도 끝에 살해당했다. 이 여성은 평소에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공장의 남자가 계속 치근덕거린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주여성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여러 가지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효과 있는 것이라면 빠짐없이 실행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과 대처는 매우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당연히 이주여성들이 성희롱과 성폭행의 위협에서 벗어나도록 당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근본적으로 이주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대책으로 바라보는 저열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지난 4월 4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신영숙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상임대표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결혼이주여성을 후손을 이어갈 씨받이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이주여성 담당 부서의 명칭은 출산·다문화팀이다. 이주여성을 저출산·고령화 사회라는 사회현상의 대책으로 상정하고 이를 너무나 노골적이고 저열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주여성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더욱이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이 매번 자신의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사실상, 한국인 남편이 함께 출입국관리소에 동행해야 한다. 결혼이주여성의 한국 사회에서의 존재 목적과 이유가 한국인과의 결혼생활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 있다고 여겨진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막론하고 정부가 이주여성을 한 사람의 존엄한 인격체가 아닌 국민의 배우자와 엄마로서만 존재 이유를 부여하면서 업신여기는 일에 앞장서온 것이다. 이주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의 시각과 구조는 그대로 두고, 성희롱과 성폭행이 발생하면 자유롭게 신고하게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이주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당장에 필요한 긴급한 조치를 취하고,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다 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주여성을 한국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도구로서만 바라보는 정부와 지자체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이주여성의 진정한 미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투운동을 계기로 이주여성을 한국 사회의 특정 문제 해결의 도구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 교정이 한국 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함께 지속되어야 한다.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