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은행 예금 가운데 가계예금 비중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득 증가세는 지지부진한데 갚을 빚은 많아 가계의 저축 여력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예금은행의 총예금 1천305조5천584억원 가운데 가계예금은 600조1천115억원이었다.

전체 예금의 46.0%를 가계가 차지한 셈이다. 이 비중은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5년 이래 최저 기록이다.

총예금 대비 가계 비중은 1990년대까지 60%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점차 떨어지더니 2007년(49.8%) 처음으로 50% 밑으로 내려갔다.

이후 하락세는 이어졌다.

2013년 49.7%로 반짝 상승하는 듯했으나 이듬해 바로 고꾸라졌고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계예금 비중 하락은 가계가 주식, 펀드, 부동산 등 예금을 제외하고 다른 재테크 수단으로 눈을 돌린 영향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가계 소득 증가세가 둔화하고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가계가 돈을 모아둘 여력마저 줄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고용 여건 악화 등 때문에 가계의 소득 여력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 역시 "가계는 총소득에서 잉여분을 저축하는데, 최근 가계부채가 늘면서 저축할 여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의 소득에서 이자, 세금 등을 빼고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실질처분가능소득'의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작년 1분기 -3.1%, 2분기 -3.1%, 3분기 -5.1%, 4분기 -2.8%로 작년 내내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대로 가계부채 증가세는 지속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신용은 1천450조8천939억원으로 1년 전보다 8.1% 늘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지난해 11월 6년 5개월 만에 인상하며 시장금리가 덩달아 상승, 가계의 빚 상환 부담도 커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총저축률은 1998년 이후 최고였지만 가계의 저축률은 7.9%로 2014년(7.3%)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가계예금 비중 축소는 기업 예금 비중이 늘어난 탓도 있다.

지난해 기업 예금 비중은 30.5%로 전년(30.9%)보다 줄었으나 그보다 직전 2년인 2014년(29.7%), 2015년(29.9%)보다 높은 수준이다.

연평균 기업 예금 비중은 1990∼1999년엔 25.5%, 2000∼2009년엔 26.3%로 작년 수준보다 낮았다.

김 교수는 "지난해에는 신산업 분야 투자 때문에 기업 투자가 늘어 기업 저축 비중이 줄어든 것"이라며 "최근 몇 년간 보면 기업들이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줄이고 사내 유보 등으로 저축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