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밀 연구개발단지로 조성해야
일자리 많이 만들면 간부는 송도에
젊은이들 원도심에도 흩어져 살아
지역경제 발전·재개발·재생 도움
필터링(filtering)이라는 것이 있다. 소득이 늘어 새집을 찾아 낡은 집을 떠나면 그 집에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이 이사를 온다. 그 사람의 소득이 늘어 다시 그 집을 떠나면 그동안 더 낡아진 그 집은 더 소득이 낮은 사람이 살게 된다. 형제가 옷을 물려받아 입는 것과 비슷한 현상을 도시 공간구조에 적용한 것이 필터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좋은 집에 대한 수요가 서울처럼 높은 곳에선 낙후 지역도 재개발이 쉬워 필터링이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인천은 경제자유구역 내 신도시에서 원도심 인구를 흡수하고 있고 원도심 주거 수요가 서울처럼 높지 않다. 필터링 현상이 일어나기 쉬워 신구 도심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샘플이 작지만 의미 있는 통계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인천 인구가 1천339명 늘었는데 전체 97.2%를 송도와 청라가 차지했다고 한다. 도시 전체의 인구가 늘어도 원도심 인구가 주는 현상의 배후에는 송도와 청라가 있다. 싼 집값을 찾아 타지에서 인천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필터링의 마지막 단계를 채우게 되면 사회복지 비용도 증가한다. 청라는 주거 개발이 거의 완료되었지만, 송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원도심 쇠퇴가 걱정된다고 송도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엔 인천에서 일하면서도 좋은 학군과 주거지를 찾아 서울에 사는 중산층이 많았다. 즉 인천은 서울에서 끌어당기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도시였다. 송도는 그 힘을 막아주고 있다. 송도에 첨단산업과 고급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송도에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원도심의 쇠퇴를 막고 송도를 개발하는 방법은 있다. 일자리 중심으로 송도를 개발하는 것이다. 분양 면적 기준으로 판교테크노밸리는 13만 평인데 약 8만 명이 일하고 있다. 서울 마곡R&D산업단지는 24만 평에서 16만5천 명이 일하게 된다. 많은 기업이 10층 내외의 건물에서 연구개발 중심으로 일한다.
송도는 어떤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8만3천 평에서 약 2천 명이 일하고, 셀트리온은 5만8천 평에서 약 1천500명이 일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대동소이하다. 같은 면적으로 환산하면 일자리 수가 수십 배 차이가 난다. 투자가 완료되면 달라지겠지만 심지어 7년 전에 4만4천 평의 땅을 받고 지금 100여 명이 일하는 기업도 있다. 남동산단의 3분의 1 가격에 땅을 팔고 양산(量産)형 공장을 유치한 결과다.
현재 송도 인구는 13만 명에 근접한 수준이다. 송도 계획인구는 26만5천 명이지만, 인구계획에서 빠지는 오피스텔을 고려하면 30만 명 가까이 거주하게 될 것이다. 첨단산업이라는 명목으로 일자리가 제한적인 양산형 공장을 유치하거나, 대학캠퍼스처럼 듬성듬성 저층 건물을 지어 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한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앞으로 짓게 될 송도의 아파트는 원도심에서 이주하는 사람들로 채울 수밖에 없다. 원도심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송도 11공구를 판교나 마곡처럼 중고밀 연구개발단지로 개발하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송도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아마도 간부진은 송도에 살고 젊은 직원은 송도와 원도심에 흩어져 살게 될 것이다.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원도심 재개발이나 재생에도 도움이 된다.
첨단산업이라도 지역에 어울리는 것은 따로 있다. 갤럭시S는 베트남에서, 아이폰은 중국에서 조립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R&D나 기획은 한국과 미국에서 한다. 첨단산업이라는 명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별 사업장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유치한 사업장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 연구개발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가 투자 유치 기준이 돼야 한다.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