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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 왕조인 청나라의 강희제는 만한전석에 민족화합의 메시지를 담았다. 만주족의 식탁과 한족의 식탁을 합쳤다.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를 한 식탁에 모아 하루 두번씩 사흘에 걸쳐 나누어 먹여 한 식구(食口)의 연대를 확인토록 한 것이다. 춘추시대 노나라는 왕의 배식 실패로 공자를 잃었다. 조국인 노나라를 등질 구실이 마땅치 않았던 공자에게 제사고기 분배를 깜박했고, 공자는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지고 봇짐을 꾸렸다. 조조는 자신의 개국대업을 반대하는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다. 텅빈 도시락의 의미를 모를리 없는 순욱은 자결한다.

권력자의 식탁과 음식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기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와대 정상만찬 때 올랐던 독도새우를 놓고 일본이 시비를 걸었다. 독도가 한일간의 갈등 현안인 걸 뻔히 알면서 독도새우가 웬말이냐는 요지의 시비였다. 우리 입장에선 택도 없는 투정이지만, 일본은 한국의 의도적 영토선언 메뉴로 여긴 것이다.

곧 이어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혼밥외교라는 비난에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이 혼밥을 먹을 정도로 중국의 홀대를 받았다는 여론이었다. 청와대는 오바마의 베트남 혼밥에 견주어 대통령의 베이징 혼밥을 변명했지만,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의전은 분명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결정되자 중국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정의용 특사를 극진히 모시더니, 북중정상회담 만찬에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에게 2억원 짜리 명품 마오타이를 대접했다. 지금 베이징에서 한중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면 정상만찬은 확 달라질게 분명하다.

청와대가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를 공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바다에서 잡은 민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쌀,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의 서산농장 한우, 문 대통령의 고향생선 달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을 올린단다. 남북대화와 교류의 남측 주역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메뉴가 하나씩 식탁에 오를 때 마다 대화가 이어지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다만 윤이상의 고향 통영문어까지 올린다는데, 정상만찬에 담을 대북 메시지에 신경쓰느라 우리 내부의 미묘한 정서를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