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돈·권력향유·갑질수단 안돼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역할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립 필요
국민행복·사회보탬 안된 기업·국가
사멸했던 역사적 교훈 직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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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정은 위원장과 재벌 3세. 세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12시간 만에 장안의 화제로 등장했다. 하지만 재벌 3세에 대한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후 그는 3세 세습이라는 비난과 조롱 속에 등장했다. 자칭 북한 전문가들은 그와 함께 북한체제도 바로 붕괴할 것이라는 예언과 희망을 쏟아냈다. 그가 핵을 내세워 북한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마다 악의 축으로 낙인도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한반도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어두운 전망들이 난무했다. 그랬던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결기어린 한반도 평화정착메시지를 수용하면서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바뀐 데에는 생방송과 신문의 위력이 컸다. 동시에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결단 그리고 남북한의 교류와 평화통일을 희망하는 국민들의 염원이 함께 기여했다.

돌이켜 보면 북한과 지도자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때로는 일방적이었다. 북한 자체의 정보도 대부분 가공된 것이었다. 김정은의 실체 역시 국민들이 직접 접해본 적이 없었다. 세습과 핵무장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가능했던 이유다. 온갖 부정적인 대명사의 상징이었던 그가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여 준 파격적인 행보가 일종의 신선한 쇼크로 다가왔다. 그것은 베일에 덮여 있던 것이 드러날 때 오는 극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1983년 1월 태생에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것 이외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그가 세습한 북한의 체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멸망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의 3세 후계구도는 김정일 위원장이 개정한 북한 헌법 제 11조에 이미 명문화되어 있다. 외형적으로는 당이 주도하는 선군정치이지만 의무교육과 비밀경찰 등으로 유지되는 통치시스템이다.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세습체제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대상과 영역이 다를 뿐 우리에게도 3세 세습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상속이나 증여를 통한 방식이다. 거기에다 불법과 편법도 동원되고 있다. 재벌, 언론, 기업, 교회, 사학 등의 부정한 세습에까지 관대하다 못해 당연시 했다. 눈을 감고 침묵하는 사이에 입시나 채용부정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참다못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오히려 희생양이 되었다.

편안한 삶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부정한 현실을 회피하였다. 위로는커녕 강자의 편에서 상처를 헤집는 파렴치한 자들도 있다. 재벌과 3세들의 갑질이 폭로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돈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침해하는 일부 재벌과 부패한 3세들에 대한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누적된 해악들에 대한 거센 분노에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변화 요구가 담겨있다.

과연 재벌 혹은 세습한 3세들이 집착하는 물질적 부의 토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그리고 명퇴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희생과 피눈물의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그 토대가 무너지면 상부구조도 존재할 수 없다.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제 3세계의 기술추격으로 상징되는 변수들은 우리사회에 당면한 위기적 요소다. 그런데도 일부 재벌과 3세들의 행태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비판의 칼날이 그들의 능력과 자질로 집약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습. 그 자체를 비난할 대상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 하지만 세습이 돈과 권력을 향유하는 자리나 갑질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재벌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세습에 대해 재정립이 필요한 논거다.

재벌들과 세습권력에게 국민들이 묻고 있다. 과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은 무엇인가.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에 대한 고민이 최선의 삶에 대한 고민'이라고 했다. 국민들의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리더와 CEO, 올바른 공동체와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는 기업과 국가는 반드시 사멸했던 역사적 교훈을 직시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