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4년 10월 25개국의 외교관 41명이 워싱턴에서 국제 자오선회의를 갖고 '하루의 길이'와 '하루의 시작'을 정했다. 그러기 위해선 표준시가 필요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가 기준으로 정해졌다. 지구의 북극점과 남극점을 연결하는 자오선을 동경과 서경으로 나눌 때 그 출발점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니치 동쪽에 있는 서울은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쓴다. 영토가 넓은 나라들은 여러 개의 표준시를 사용한다. 미국은 동부, 중부, 산악지대, 태평양 등 4개의 표준시가 있다.
우리 만큼 표준시가 많이 바뀐 나라도 없다. 모두 불행한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는 1908년 4월 1일부터 동경 127.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며 서양식 시간대를 처음 도입했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1912년 1월 1일 우리의 표준시를 일본 표준시인 동경 135도 기준으로 정했다. 해방후 이승만 정부는 1954년 3월 21일 표준시를 동경 127.5도로 바꿨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1961년 8월 10일부터 다시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쓰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15년 8월 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표준시를 이전보다 30분 늦은 '평양시'(127.5도)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일제 잔재 청산'이 그 이유였다. 그후 부터 30분 '시차신경전'이 있었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우리 군이 확성기방송을 시작하자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렸고 8월25일 낮 12시를 기해 방송 중단과 준전시 상태를 해제키로 합의를 봤다. 우리 군은 낮 12시에 확성기를 껐지만 북한은 12시 30분에 준전시 상태를 풀었다. 당시 협상 역시 자정을 조금 넘겨 타결되는 바람에 같은 합의를 두고 우리는 '8·25 합의', 북한은 '8·24 합의'로 불렀다.
북한이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판문점회담에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화의 집 대기실에 시계가 2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서울 시간, 다른 하나는 평양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를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며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평양시간'은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제야 남북이 같은 시간대에 살게 됐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