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에게 지지율은 계륵(鷄肋)같은 존재다. 조사 방법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입으로는 "지지율은 바람불면 '훅' 날아가는 새털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이란 늘 그렇다. 1981년 존 힝클리가 쏜 총에 맞고 병원에 실려가면서 "예전처럼 영화배우였다면 잘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던 레이건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던진 이 유머로 지지율이 83%까지 치솟았다. 이듬해 지지율이 30%대로 폭락하자 걱정하는 참모들에게 "다시 한번 총 맞으면 된다"며 유머로 넘겼지만 속은 매우 쓰렸을 것이다. 그는 배우가 아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지지율은 민심의 거울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동력 상실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취임하던 해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지지율 직격탄을 맞았던 이명박 정부가 그런 경우다. 지지율 추락으로 국정은 만신창이가 됐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론조사에서 적절한 표본 선정은 큰 난제다. 조사기법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표본 선정의 오류는 여론 조사의 왜곡을 부른다. 정치의 무관심으로 인한 낮은 응답률도 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이다. 특정 지역과 계층, 세대 그리고 질문 내용과 시기, 방식까지 꼼꼼히 따져보면, 과연 여론조사로 민심을 완벽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많다.
지난 4일 한국갤럽이 조사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이 83%로 역대 대통령 취임 1년 지지율 최고를 나타냈다. 8·9일 이틀간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76.1%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남북관계 복원'으로 큰 점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1년 내내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여왔다. 적폐청산 등 주요 정책들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지지율에 힘입은 바 크다.
문재인 정부는 연인원 1천600만명이 참가한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다. 그러니 여론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지율에 너무 집착하면 '여론조사 정치'라는 함정에 빠진다. 반드시 챙겨야 할 중요한 과제를 잊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여론조사는 '하나의 수치'로 참고 지표일 뿐, 정책의 절대적 결정 수단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때론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취임 1년을 맞은 문대통령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