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재밌게 보고 있다. 경계 없는 인간적 연대(連帶)가 만들어 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때론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드라마는 보여준다. 최근 방영분에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돌연 귀의(歸依)한 겸덕이 옛 여자가 찾아오자 반조(返照)를 위해 면벽 묵언(默言) 수행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반조는 몸(身)으로 입(口)으로 생각(意)으로 짓는 업(業)을 돌이켜 보는 불교 수행의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면벽 묵언 수행만큼 좋은 게 없다. 달마대사가 묵언 정진의 면벽 좌선을 9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면벽구년(面壁九年)'이란 말도 나왔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가벼운 입 놀림으로 인한 낭패의 사례로 늘 등장하는 게 콘드라티 릴레예프다. 그는 1825년 12월 14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 날 벌였던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의 밤' 주동자였다. 사형 언도를 받고 동료들과 함께 사형대에 목이 매였으나 운이 좋았던지 줄이 끊어져 혼자만 살았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교수형 집행 과정에서 살아난 사람은 '하늘의 뜻'이라며 살려주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밧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고 조롱했다가 진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입을 다물었다면 살아남아 후에 더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막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이제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질세라 막말에 가세했다.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 김성태 원내대표를 겨냥해 "깜도 안 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 도로 누웠다"며 "한국당은 빨간 옷을 입은 청개구리당"이라고 조롱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뚫어진 입이라고 막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설화(舌禍)로 그토록 고생 하고도 고쳐지지 않는 게 정치인들의 막말이다. 잊혀지는 것보다 막말이라도 해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 게 정치인들의 속성인 모양이다. 그러나 집권당과 제1야당 대표가 시정잡배같이 내뱉는 막말은 국민을 절망에 빠뜨린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국회의 벽 앞에 앉혀 놓고 면벽 묵언 수행이라도 시켜야 할 판이다. "이제 그 입 좀 다물라!"는 국민의 질타를 제발 귀담아 듣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