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 전주제지 '한솔'로 개명
장남 제일제당·3녀 신세계百
첫 분가 2남 새한미디어 세워


2018051401001009700047681
삼성의 계열사 분리작업은 1987년 11월 19일 창업자 이병철의 사망에서 비롯됐다.

이병철 사망 당일 삼성그룹 경영권은 3남 이건희에 승계됐는데 계열분리가 본격화한 것은 1994년 전주제지의 경영권이 장녀 이인희에 귀속되면서부터였다.

장남 이맹희는 제일제당을, 2남 이창희는 제일합섬을, 3녀 이명희는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의 경영권을 각각 확보했다.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된 계열사 중 가장 먼저 그룹을 형성한 사례는 한솔그룹이었다. 이인희는 전주제지를 한솔제지로 개명하고 1995년에 국내 10위권의 전기부품생산업체인 한국마벨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한솔그룹을 형성했다.

한솔그룹은 1997년 당시 자산총액 4조3천460억원으로 재벌순위 16위에 랭크됐지만 외환위기 때 경영부진으로 사세가 다소 위축됐다.

이맹희의 장남 이재현은 제일제당을 모체로 1995년에 드림윅스SKG와 제일C&C, 제일신탁투자 등을 잇따라 설립해 그룹화를 도모, CJ그룹을 형성했다.

CJ그룹은 2011년 현재 계열사 수 65개에 자산총액은 16조3천230억원으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순위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공기업 등을 제외한 순수 민간기업집단 순위는 14위다.

한편 CJ그룹은 2011년 11월 17일에는 국내 최대의 물류기업인 대한통운의 지분 37.6%를 1조6천605억원에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인수해서 덩치를 키웠다. 삼성그룹은 2011년 6월 삼성SDS를 앞세워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가해서 CJ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명희는 신세계백화점을 모체로 E마트를 국내 최대의 대형할인점 체인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신세계백화점그룹은 2011년에는 계열사 13개에 자산총액이 16조400억원을 기록,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순위 24위에 자리매김했다. 공기업 등을 제외한 재벌 순위는 15위다.

주목되는 것은 제일합섬이다. 2남 이창희는 형제 중 가장 먼저 분가해 1967년에 새한미디어를 세웠으며 1973년에는 새한종합개발, 새한콘트리트 등을 묶어 새한미디어그룹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1991년 혈액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장남 이재관이 그룹을 물려받으면서 1995년에 삼성그룹이 보유한 제일합섬((주)새한)의 지분까지 넘겨받아 새한그룹으로 재발족했다.

경북 구미시 공단동 287에 위치한 (주)새한은 1972년에 삼성그룹 주력기업인 제일모직이 일본의 미쓰이, 도레이 등과 합자해서 제일합섬으로 설립됐다.

1974년 구미공장에 이어 1975년 경산공장을 완공했다. 1977년 7월 기업을 공개하고 1985년 천연색필름 기술개발에 성공했으며 1987년에는 감광 수지도 개발했다. 1989년에는 항균 방취 바이오엑셀과 사진 감광제를 개발했고, PPS컴파운딩 수지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새한그룹은 학생복, 비디오테이프, 오디오테이프, 스판덱스를 주로 생산해 1997년 당시 계열사 12개를 거느린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으나 무리한 사업확장 등으로 부실화돼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1999년 이후 필름 부문과 홈비디오 사업을 잇따라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나 화섬경기 악화와 새한미디어 등 계열사 지원 부담이 증가해 2000년 6월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그 와중인 2008년 1월에 웅진그룹이 (주)새한을 800억원에 인수해서 웅진케미칼로 상호를 변경했다. 새한종합건설은 (주)새한에 합병된 후 그해 5월에 수(水)처리시업을 분리해서 웅진코웨이에 양도했다.

물류기업인 새한로직스(주)는 웅진로지스틱스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새한정보통신(주)는 웅진정보통신의 모체로 작용했다. 삼성의 파생재벌 중 새한그룹만 유일하게 사라진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호텔조선, 제일합섬, 제일제당, 전주제지 등은 오랜 기간 기반을 착실히 다져온 과점기업이자 동시에 리더기업인 터에 국내 최대의 삼성그룹이 후견인 역할을 하는 상황이어서 한솔, CJ, 신세계백화점그룹은 비교적 쉽게 신흥재벌로 거듭날 수 있었다.

CJ, 신세계, 한솔의 계열분리에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