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주 40시간 노동에
최저임금 인상·정규직 보장이다
100년후엔 기본소득 보편화 가능
지금 필요한건 일하는 시간 줄이기

실업률이 9%대로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 높았던 핀란드는 기본소득이 '좋지 않은' 일자리라도 취업하는 효과를 기대하였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물론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대상자를 실업자로 한정하여 취업·소득에 상관없이 최저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취지와 어긋나기 때문에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개념,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성패에 대한 판단은 아직 이르지만, 필자는 이 논란을 접하면서 1년 전 한 행사에서 독일 교수가 한 말이 다시 생각이 났다.
"독일에서도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일부 기업가들이 제기한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은 신성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이기 때문에 노동 없는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 노조도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전직 훈련이다. 두 번째로는 새롭게 생기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 같은 곳에서 키워 주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 시간 단축도 병행돼야 한다. 그래도 전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면 그때, 기본소득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기본소득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것이다. 사실 독일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적은 나라이다. 연간 1천363시간(52주 기준 주당 26시간)에 불과하다. 한국은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어 연간 2천212시간(주당 42시간)에 달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일자리 감소에 대하여 모든 나라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인더스트리 4.0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추진하고 있는 독일이 일자리 감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사회적 합의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첨단 제조 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면서 독일이 취한 또 다른 정책은 생산의 한 축인 노동 4.0이다. 노동 4.0은 노동의 유연성, 노동 시간과 장소의 노동자 결정권을 높이는 방법 등으로 국민 100%가 일하는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 전 5월 1일은 128주년 세계 노동절이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지역의 노동자들은 '8시간,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하였다. 하루 12~16시간의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1760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120여년이 지나 하루 8시간 노동을 '좋은 노동'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물론 노동시간의 단축은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노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였다. 1914년 포드자동차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동차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줄이고 임금을 인상시켜서 노동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하였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는 미래에 좋은 노동은 무엇일까? 독일은 노동 4.0 백서에서 다름과 같이 그리고 있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 지식 노동자, 혹은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작업 스케줄을 짜는 생산직 노동자 등이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노동'은 무엇일까? 우리는 여전히 주 40시간 노동,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보장이다. 100년 후에는 기본소득이 보편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 줄이기이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