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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미당 서정주가 23세 때 쓴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자화상'의 한 구절이다. 시가 발표된 건 1935년. 벌써 8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시를 읽으면 한줄기 찬바람이 가슴 속을 쏴~하며 지나가는 느낌이다. 바람이 키운 것은 비단 젊은 시절의 서정주 시인 뿐 만이 아니다. 25세의 윤동주를 통절하게 반성케 하고 괴롭히면서 정신적 성숙을 가져다준 것도 '잎새에 이는 바람'이었다. 시에서 바람은 희망이 되기도 때론 시련의 빛깔로 나타나기도 한다.

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도 바람이었다. 촉의 방통이 조조를 속여 위의 배들을 쇠사슬로 연결하는 '고리를 잇는 계책', 이른바 '연환계(連環計)'를 썼다. 208년 동짓날, 제갈공명이 예측한 대로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졌다. 그 때 화공(火攻)을 펼치자 조조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누가 뭐래도 바람하면 선거판이 빠질 수 없다. 바람 없는 선거는 상상할 수 없다. 요즘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바람을 탄다고 한다. 선거 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호재를 찾아 SNS를 들락거린다. 선거를 앞두고 터지는 사건에 바람 풍(風)자를 붙이는 것도 바람이라도 타서 승리하고 싶은 정치인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안기부가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위해 '흑금성'이 저지른 공작정치 북풍(北風), 국세청장이 대기업 23곳에서 대선자금을 모금해 이회창 후보 측에 넘긴 세풍(稅風),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후 치렀던 총선은 탄핵 역풍, 즉 '탄풍(彈風)'이었다. 선거판의 바람은 마침내 역사까지 바꿨다.

6·13 지방 선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선거 바람이 좀처럼 불지 않고 있다. 선거를 치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아예 사라진 느낌도 든다. 세월호 침몰사고 여파로 유례없이 조용했던 2014년 6·4 지방 선거를 닮았다. 당시 집권당은 역풍을 맞을까 대놓고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지금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그 흔한 후보 TV 토론회도 볼 수 없다. 어찌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블랙홀'처럼 선거 바람을 모두 빨아들인 탓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선거, 이런 선거는 생전 처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