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건에는 다 주인이 있는 법
실력·운 따르는 수집가 되기위해선
열심히 공부도 해야 하지만
인성과 끈기도 갖춰야 한다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다'는 말도 대나무책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죽간은 대나무를 세로로 자른 다음 불에 쬐어 말리고 여기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끈이나 가죽으로 이어 만든 귀중한 물품이었다. 그 귀한 죽간에 기록된다는 것은 미증유의 업적이나 위인을 의미하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종이와 인쇄술이 등장하기 이전 중세 유럽에서 책을 만드는 주재료는 양피지였다. 당시 성경책 한 권을 만드는데 무려 200마리 이상의 양가죽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에 기록되는 것은 동시대와 동시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들일 수밖에 없다. 신성로마제국시대 수도원을 배경으로 삼은 움베르토 에코의 세계적인 걸작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보면 수많은 수도사들이 미로처럼 복잡한 도서관에서 필사하고 책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유명한 대형 수도원일수록 책을 필사하고 제작하는 공간인 '스크립토리움' 곧 필사실을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책은 특별한 권위와 위상을 가진 보물이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책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유역의 원시림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귀한 책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지구의 귀한 자원을 투입해서 만든 책들이 냉혹한 시장의 논리와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 폐기물로 처리되거나 중고시장과 헌책방으로 쏟아져 나온다. 우리처럼 고서점과 헌책방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수집가나 독서와 책에 미친 간서치(看書癡)들이야말로 정신자원 재활용업자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자원 재활용업자들이 책을 고르고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는 유명한 작품이나 저작물, 둘째는 절판본이나 희귀본, 셋째는 지명도가 높은 저자의 책, 넷째는 귀한 자료로 재조명될만한 책, 다섯째는 책의 상태이다. 책 상태는 상품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중요하다. 표지·책등·판권(간기)·내용 등이 온전히 남아 있는 책과 초판본인 경우에 더 귀한 대우를 받는다. 물론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아주 희귀한 경우라면 초판, 재판이나 책 상태를 따질 것이 없다. 그밖에 저자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으면 몸값이 더 높아진다. 또 외국서적보다는 국내서적이, 한적본의 경우에는 대개 필사본보다는 목판본이, 목판본보다는 활자본이 더 비싸다.
헌책방에서 고서는 "까만 거"라는 은어로 통칭된다. "까만 거"를 살 때 투자가치가 있거나 필요하다면 일단 따지지 말고 사 두는 편이 좋다. 좋은 책과 자료가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구하는 책이 있다면 에둘러 말하지 말고 솔직하고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지금은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고서에도 대략적인 가격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저렴한 가격에 눈먼 책을 사는 시대는 지나갔다. 물유각주(物有各主)라고 모든 물건에는 다 주인이 있는 법이며, 실력 있고 운이 따르는 수집가(주인)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도 해야 하지만 인성과 끈기도 갖추어야 한다.
교산 허균(1569~1618), 육당 최남선(1890~1957) 등 같은 대시인이자 학자들도 역대급 수집가들이었으며, 국어학자였던 방종현(1905~1952) 교수는 고서 수집을 위해 아예 헌책방을 차릴 정도였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고서 수집에도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며, 도(道)가 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