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사는자에게만 다가오는것
겨울과 강·나무와 풀 늘 말 걸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두 귀가 순해진 시인뿐이다
나는 늘 시인이 부러웠다. 나도 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깜냥으로는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를 많이 읽다 보면 마침내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백석과 윤동주, 김수영과 기형도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칠레의 시인 네루다도 시에서 이야기하길,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시인조차 시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셈이니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학평론가 도정일 선생의 글을 읽고 난 뒤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도정일 선생은 시인이 세상을 향해 뭔가 보여주고 싶을 때, 이를테면 나무라든가 구름, 당나귀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그냥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사는 것이라 했다.('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문학동네) 요컨대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 수필가, 화가는 '가'이되 시를 쓰는 사람만큼은 '시인'이다. 그가 갖고 있는 재주가 아니라 그냥 온전히 존재 자체가 시인 사람, 시인이라서.
방법을 알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쳤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시인이 아닌 나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어느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접하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한국에서 소득 가장 낮은 직업 2위는 수녀, 1위는?'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기사를 읽지 않고도 답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열어 보았더니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소득별 직업 순위 정보를 포함한 '2016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으로 한 해 평균소득이 542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5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한 달을 사는 일, 하루 세끼 챙겨 먹기에도 벅찬 수입으로, 겨울에는 춥게 여름에는 덥게 사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끝내 시를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날 지리산에서 올라온 박남준 시인은 '마음의 북극성'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 꼭 그만큼씩 울음을 채워주던 강물이 말라갔다 / 젊은 날의 나침반이었던 내 마음의 북극성만이 아니다 / 간밤에 미처 들여놓지 못한 앞강이 / 꽁꽁 얼기도 했다 / 강의 결빙이 햇살에 닿으며 안개 또는 김발로 명명되고 /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만든다 / 아~아지랑이 / 어쩌면 치미는 슬픔 같은 먼 봄날의 아지랑이 / 이렇게나마 겨우 늙었다 / 강을 건너온 시간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 두 귀가 순해질 차례다'
두 귀가 순해진다는 시구는 공자의 '이순(耳順)'에서 따온 말일 테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비로소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쓰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나무들이 말을 하고 시냇물이 소리를 내며 언 강이 녹으며 봄날의 아지랑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나는 또 네루다가 시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며,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뜻도 알았다.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시인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겨울과 강, 나무와 풀은 늘 말을 걸어오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귀가 순해진 사람, 시인뿐이다. 시인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인을 존경한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