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흔들림없는 문대통령·민주당 지지율
홍대표의 거친 입·결집력 부재인 한국당
'르네상스'라는 큰 대문 연 '메디치'가문처럼
내 지역 이끌 인재 발굴하는데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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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솔직히 놀랐다. 아무리 여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해도 분위기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운동장이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졌다. 평창 올림픽부터 판문점 정상 회담 등 남북관계 해빙이 결정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말고 야당이 일방적으로 당해야 할 만한 딱히 큰 잘못도 없었다. 오히려 야당 측에 유리한 호재도 잇달아 터졌다. 차기 여권의 대권후보 1순위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태도 현 정권에겐 매우 아팠다. 그리고 드루킹 . 어디 이 뿐인가. 실업률 급증, 재활용 쓰레기 파동, 입시정책 혼란 등 잇따른 정부의 정책 실패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특히 드루 킹 사건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제 발등 찍는 걸 모르고 네이버 댓글 수사를 요청하면서 불거진 것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댓글을 단 사람이 민주당원이었고, 그 주모자 입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옛날 같으면 선거의 결과를 뒤집을 만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다. 오히려 특검을 주장한 한국당이 추경예산 통과에 딴죽을 건다며 역풍을 맞는 형국이다. 여전한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과 흔들림이 없는 50%의 민주당 지지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요즘 신문사 밥 먹고 있다고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질문이 거의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 보면 6·13선거에 그렇게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다. " 그래도 한국당이 경기도내 기초단체장 한 석은 차지하겠죠?"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다. 그가 민주당 지지자라면 조롱이고, 한국당 지지자라면 체념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질문이 너무 고약하지 않은가. 경기도 31개 시 군중 현재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은 15명이다. 반타작만 해도 7석이다. 그런데 5석도 아니고, 달랑 1석?

김무성 전 대표가 친박계 공천에 반발, 공천장 직인을 찍어주지 않고 부산으로 도피했던 이른바 '옥쇄파동'이 일어난 건 2016년 4·13 총선 전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역사에 기록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두 명의 대통령이 구속됐다. 그날부터 시작된 보수의 균열은 그때보다 오히려 더 악화 된 느낌이다. 단 한 골도 못 넣고 31대0 패배를 걱정할 만큼 사실상 붕괴 수준이다. 6·13선거는 한국당을 심판 하는 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을 것이다.

지금 우파 보수층은 결집이 불가한 모래알 같다. 이 지경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보수야당, 특히 한국당 탓이 크다. 특히 홍준표 대표의 거친 입을 향한 장년층 보수 우파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아무리 남북 회담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고 해도, 한때 정권을 잡았던 당이다. 그리고 지금은 제 1 야당이다. 그런데도 70년간 구축된 '냉전의 지축'이 붕괴의 파열음을 내고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빨갱이론'같은 판에 박힌 비판으로 일관한다면 이를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사 북한과 관련된 홍 대표의 말이 맞다손 쳐도 그의 거친 입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러니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의도적으로 홍 대표와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이제 홍 대표부터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보수층이 움직인다.

중세(中世) 1000년의 종지부를 찍은 건 권력도 종교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었다.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메디치 가문은 주변의 인재를 끌어모아 아낌없는 후원으로 '르네상스'라는 큰 대문을 열어젖혔다. 메디치 가문은 화려한 스펙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채 드러내지 못한 인재에게 어떻게 영감을 불어 넣어줄 것인가를 늘 고민했다.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나와 가족의 삶과 직결된 내 지역을 이끌 단체장을 뽑는 선거다. '선거는 끝났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사심없이 일할 내 지역 인재를 발굴하는, 지금 우리는 메디치 가문처럼, 처절하게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