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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비뇽은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여름이면 수십만 명이 몰려드는 도시로 변한다.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아비뇽 연극제 때문이다. 덕분에 인근 마르세유, 니스도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말이 연극제지 이젠 장르도 다양해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 연극, 음악, 현대무용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공연 진수성찬'이다.

첫술부터 배부른 건 아니었다. 1947년 연출가 겸 배우 장 빌라르가 문화의 부재로 심각한 심적 박탈감을 갖던 프랑스국민을 위해 아비뇽 교황청 앞마당에 무대를 꾸미고 연극 3편을 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14세기 아비뇽은 교황의 거처였다. 그때 지어진 견고한 고딕 석조 건물인 교황청이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극제가 시작되면 이곳 안마당 '쿠르 도뇌르'엔 2천석의 대형 공연장이 마련된다. 장 빌라르는 "연극은 고대 그리스 작품처럼 야외극장에서 대규모로 이뤄질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꼽는 아비뇽 연극제 성공 원인은 두가지다. 첫째 연극을 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것이다. 왕족,귀족 등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연극 무대를 과감하게 광장, 거리, 공터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니 대중이 환호와 갈채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비뇽은 도시 전체가 중세 성벽들에 둘러싸인 도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분위기가 연극과 궁합이 잘 맞았다. 무대만 만들면 모든 곳이 천연 공연장이었다. 조명과 성곽의 조화는 아비뇽 연극제 성공의 밑바탕이었다.영국 에딘버러 축제도 마찬가지다.

수원연극축제가 오는 25일부터 3일간 열린다. 장소는 매년 열리던 화성 일대가 아닌, 서둔동 옛 서울대 농생대 부지 '경기 상상 캠퍼스'다. 장소 변경의 표면적 이유는 '미세먼지와 더위' 때문이라고 한다. 수원연극축제는 1996년 첫 선을 보였다. 중간을 건너 뛴 해도 많았고 명칭도 들쭉날쭉이었다. 어느 해에는 '세계 연극제'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연륜이 22년이 됐음에도 '개성없는 연극축제'라는 눈총을 받았다.

수원연극축제의 진가는 무대·조명이 성과 어우러질때 나타난다. 성은 이미 차려져 있는 밥상이다. 그런데 그 밥상을 걷어차고 엉뚱한 데서 밥을 먹는 꼴이다 . 이러다 내년엔 실내에서 연극제가 열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벌써 끔찍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