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개통한 '9월 18일' 기념일로 정해
정부, 철도국 창설일인 '6월 28일'로 변경
보수, 건국기점 바뀐것 화풀이라면 곤란
정부는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철도의 날을 바꾸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일제가 정한 철도기념일로 따지면 81년 만에 바뀌는 셈이 된다.
1937년 일제는 우리나라 최초 철도인 경인선 노량진~제물포 구간 개통일(1899년 9월 18일)을 '철도기념일'로 삼았고, 1964년 11월 우리 정부는 이날을 '철도의 날'로 이어받았다. 경인선은 일제가 한반도 침탈을 목적으로 건설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80년 넘게 이날(9월 18일)을 기념해왔다는 점에서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길 수 있다.
일제가 1937년 철도기념일을 만든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철도기념일 제정 이유는 일본 센코카이(선교회·鮮交會)가 1986년 4월 펴낸 '조선교통사'(朝鮮交通史)에 나온다.
일제는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철도 종사원의 사기를 높이는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철도는 전쟁 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중요한 수단이라 그랬다. 특히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병력과 물자 수송이 매우 중요해졌고, 이에 따라 철도의 군사 수송 업무도 급격히 증가했다.
일제는 철도국 국기(局旗)와 국가(局歌)를 만들고, 경인철도합자회사가 한국 최초로 경인선 노량진~제물포 구간에서 철도를 운영한 9월 18일을 철도기념일로 정했다. 경인선 개통이 아닌, 자신들이 경인선을 처음 운영한 날을 기념하는 데 의미를 둔 거다. 그다음이 더 문제다. 철도기념일에는 서울에서 철도국, 철도·건설·개량 각 사무소, 공장, 역사 전 직원, 인근 호텔과 식당 대표 등이 모여 조선신궁(일제강점기 서울 남산에 세운 신사)을 참배했다. 지방에서도 각 사무소, 공장, 역사 전 직원이 그 지역의 신사를 참배하고 각종 행사를 개최했다. 철도 종사원 3분의 2가량은 조선인이었다. 이토록 치욕적인 날을 그동안 우리 스스로 '철도의 날'로 기념해온 것이다.
경인일보가 일제 잔재인 '철도의 날'을 바꾸자고 처음 보도한 게 2016년 9월 12일이다. 이를 계기로 국회에서 '철도의 날 재지정 촉구 결의안'이 발의됐고, 정부는 기념일 변경을 검토하게 됐다. 박근혜 정부 시기의 일이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에선 문재인 정부가 편향된 이데올로기와 역사관에 따라 기념일까지 맘대로 바꾼다고 난리다. 자유한국당 모 의원은 "6월 28일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한강 이남 진격을 막기 위해 한강철교를 끊은 날"이라며 6월 28일을 '철도의 날'로 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설득력이 떨어지고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우리나라 철도국이 창설된 날은 1894년 음력 6월 28일이다. 양력으로 환산한 7월 30일을 '철도의 날'로 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당시에는 음력만 사용했기 때문에 그 날짜를 인용해도 된다"는 정부 입장도 일리가 없진 않다. '철도의 날'처럼 음력을 양력으로 가져온 경우가 여럿 된다.
철도의 날 변경에 대한 보수 진영의 삐딱한 시선은 건국 기점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로 변경된 것에 대한 불만이요, '국군의 날'과 '경찰의 날'이 바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현 정부가 못마땅하다고 '철도의 날'에 화풀이하는 건 곤란하다.
/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