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 이경규를 스타덤에 올린 건 '몰래카메라'다. 1991년 모 방송국 예능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한 코너로 선보이자 마자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난처하게 조작된 상황에 갇힌 유명 연예인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을 당사자만 쏙 빼고 진행자와 시청자가 한 통속이 돼 깔깔대며 즐겼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최진실을 천사옷을 입혀 공중에 매달거나, 웨이터를 시켜 고현정에게 물벼락을 때린 뒤 그 반응을 수많은 '몰카'로 찍어 편집하는 방식이다.
몰카의 선풍적인 반응 덕분에 코너 MC인 이경규는 '일밤' 메인 MC 최수종, 주병진의 인기를 능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언제 당할지 모르는 스타들 사이에선 '몰카 공포증'이 번졌다. 배우 최민식은 봉투에서 출연료를 꺼내 세어보는 장면이 방영된 이후 화장실에서 돈을 세어보는 버릇이 생겼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지금 같으면 방송사의 갑질로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했다. 실제로 몰래카메라 시즌2 (2005~2007)는 가학적 설정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민언련 선정 '2007년 올해의 나쁜방송'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설정이 아닌 진짜 몰래카메라 시대가 활짝 열렸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영상 콘텐츠를 유포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낳은 카메라 포비아 증후군으로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사건 여성 피의자 구속이 계기가 됐다. 경찰이 여성 피의자를 신속하게 구속 기소하자, 여성들이 단단히 뿔났다. 경찰은 혐의자가 특정된 탓이라 변명했지만, 여성들이 분통을 터트린 이유는 몰카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인데, 수많은 남성 가해자 중 극히 일부만 사법처리되는 현실에 있다. 2017년 몰카 피의자 5천437명 중 남성이 5천271명(96.9%)이었고, 2016년은 전체 피의자 4천491명 중 4천374명이 남성이었다. 구속자는 2016년 135명, 2017년 119명에 불과했다.
몰카 범죄는 갈수록 은밀해지고 확산일로다. 급기야 최근 인천의 한 학교에서는 여교사의 치맛속을 몰래 찍던 고교생이 현장에서 딱 걸렸다. 여교사는 학생을 교무실에서 훈육하던 중 봉변을 당했다. 학생의 스마트폰에서 자신의 치맛속을 확인한 충격에 여교사는 휴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중이라 한다. 개인의 인생을 끝장 낼 영상 콘텐츠를 돌려보며 낄낄대는 집단적 가학성 관음증. 카메라 디스토피아를 예고하는 우울한 풍경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