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트럼프·김정은이 써내려 간
반전에 반전 거듭해 온 '北美회담 드라마'
상대방 모두 만족하는 '해피엔딩' 기대

영화에서 아동 심리학자 말콤 크로우 박사(브루스 윌리스 분)는 자폐증에 걸린 여덟 살 난 소년 콜 시어(할리 조엘 오스멘트 분)의 치료를 맡게 된다. 콜은 죽은 자들이 자기 앞에 나타나 뭔가를 호소하는 일이 반복되자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다. 영화는 내내 콜의 상태에 집중하게 하다 막판에 말콤의 정체를 드러내며 신음을 내지르게 한다. 말콤에 대한 놀랄만하고 어질어질한 반전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신인이었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으로 명감독 대열에 서게 됐고 이후 '식스 센스'식 '반전' 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 시간으로 지난 24일 밤 11시에서 27일 오전 10시 20분까지 나흘간 문재인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써내려 간 '북미회담 드라마'는 '식스 센스'의 '반전' 그 이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오전 11시께 공개서한 형식으로 북미회담 취소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북미회담을 둘러싼 아슬아슬한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됐지만, 한반도의 운명과 동북아, 더 나아가 세계의 미래가 걸린 세기의 이벤트를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취소하리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북한의 태도 역시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 서한이 발표된 지 약 9시간 뒤인 25일 오전 7시 30분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문을 내놓았다. 담화문은 첫머리에 '위임에 따라'를 표시해 김정은 위원장의 뜻임을 밝히면서 "'트럼프 방식'이라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역할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기대하기도 하였다"고 밝혔다. 또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했다.
당초 예상했던 강력한 반발이 아니었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미국을 설득하려는 낮은 자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북미회담 취소에 대한 태도 변화를 예고했다.
그리고 또다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김정은 위원장의 요구로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에서 "우리 두 정상은 6·12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한 우리의 여정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내용을 발표하는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6·12 북미정상회담 재추진을 공식화하며 "우리가 말하는 지금, 어떤 장소에서 미팅이 진행 중"이라며 "회담 논의가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연일 전 세계 언론의 헤드 라인을 장식했던 '사흘간의 반전 드라마'는 이렇게 흘러왔다.
'한반도 운전자'론에 근거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선대와는 다른 김정은 위원장의 열망,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질이 빚어낸 '반전 드라마'의 최종 '엔딩 자막'은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엔딩'의 '키 맨'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조지 로스는 '트럼프처럼 협상하라'는 저서에서 "협상의 유일한 목적은 가능한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접근방식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그는 협상의 결과로 상대방 또한 만족을 얻게끔 만든다"고 기술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북미회담 드라마'의 '해피 엔딩'을 기대해 본다.
/김순기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