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언어학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에서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프레임(frame)'이라고 주장했다.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빨갱이' '위선자'등 상대방 흠집을 내는 네거티브를 끊임없이 전파하면 유권자는 그 프레임 속에 갇힌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압력을 받은 닉슨 대통령이 TV에 나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연설할 때 이미 '닉슨=거짓말쟁이' 프레임 속에 갇힌 대중은 그 순간, '닉슨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대선 막바지 안철수 당시 국민의 당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MB 아바타'라는 프레임에 걸렸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프레임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11월 미국 대선 투표일을 5일 앞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과거에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사실이 폭로됐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을 때라 앨 고어 민주당 후보 측은 쾌재를 불렀다. '부시=음주운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부시를 공격하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가 먼저 기자들에게 "나는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 버렸다. 그러자 '부시=솔직'이라는 역 프레임이 형성되면서 고어 측이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
한국당이 지난 24일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의 욕설 음성 파일을 당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런데 뒷맛이 영 고약하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6년 전부터 이미 대선, 지방 선거 등 고비 때마다 이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그 파일을 재탕한 정도다. 한국당은 '유권자에게 올바른 사실을 제공해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개했다'지만 그런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한국당은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남경필 후보가 열세를 보이자 파일을 이용해서 '이재명=패륜'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남 후보가 보수답지 않은 저질 네거티브라며 파일 공개를 오히려 극구 반대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남경필=공정'이란 프레임이 형성됐을지도 모른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정책 대결로 페어플레이 하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