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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대종사이자 선시(禪詩)의 대가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이 26일 입적했다. 1968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같은 해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했으니 법랍과 시력이 50년을 꽉 채웠다. 스님 무산은 참선과 보시에 힘썼고, 시인 조오현은 화사한 선풍 가득한 시로 속세를 위로했다.

입적 후 언론이 정리한 스님의 행장은 하나같이 막히고 거칠 것이 없는 선사의 풍모로 가득하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는 장면을 보고 "고통받는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 없다"며 "교황처럼 중생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라"고 절집을 향해 일갈했다. '만해대상'을 제정해 만해 한용운과 백담사를 오늘에 되살린 것도 무산의 업적이다. 신흥사와 백담사에 선원을 세워 사그라들던 선풍(禪風)을 진작했고, 스스로도 말년에 매년 여름과 겨울 석달 씩 백담사 무문관에서 참선에 정진했다.

시인으로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독자를 거느렸다. 천년을 사는 성자도 뜨는 해 지는 해 다본 뒤 알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에 불과하다는 '천년의 성자'는 참선 끝에 이른 궁극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제 나도 갈 일만 남은 시신입니더.(염장이와 선사)"의 염장이는 부처였고, "산에 살면서 산도 못보고 생 울음소리는 커녕 내 울음도 못 듣는(일색과후)" 중늙은이는 무산이었다. 삼라만상에 맺힌 부처의 얼굴을 용케도 알아보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스님의 선시를 읽은 문인들과 명사들의 독후감을 모아 '이렇게 읽었다 설악 무산 한글선시'를 펴낸 권성훈 시인은 무산을 이렇게 기억했다. "질문을 던지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침묵하면서 말하게 하고 소리가 없는데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무산이 "밀물 때나 썰물 때 파도 위에 떠 살던(인천만 낙조)" 그 늙은 어부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생전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적멸을 위하여)"고 작정했으니, 이제 숲에서 만날 벌레 한 마리도 예사롭지 않을 듯 싶다.

설악산 백담사와 신흥사를 중심으로 수행하던 무산의 다비식이 30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에서 열린다. 건봉사는 뒷산 철책선 너머에 등공대를 숨겨두었다. 신라시대 1만일 불공을 드리던 스님 서른한분이 마지막 염불을 왼 뒤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는 득도의 성지다. 무산 스님이, 시인 조오현이 다비의 연무를 헤치고 등공하기에 맞춤한 장소 아닌가.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