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실무협상속 벌어질 디테일 전쟁에서
숨어 있던 악마가 해코지 하는일 없어야
우리가 상상했던 장면 훼손 가능성도 차단
문대통령, 운전중 브레이크에 발 올려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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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위원
남북회담 역사의 핵심 증인인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회고(피스메이커)에 따르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남북회담의 결과 이면에는 피말리는 막후협상이 있었다. 일례로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반에 열렸던 남북고위급회담이 그랬다. 공산권의 붕괴와 한·소 수교, 한·중 무역대표부 설치로 고립무원 처지에 놓인 북한이 남한의 제의를 수락해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린 건 1990년 9월 5일이었고 그해 연말까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3차회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집착하느라 1년 가까이 회담을 지연시켰고, 결국 91년 12월에 가서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을 공동 채택할 수 있었다. 임 전 원장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했던 노태우 정부"였지만 "남북합의 사항을 실천에 옮길 시간을 영영 잃어버리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 전 원장이 대북특사로 성사시킨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도 6·15남북공동선언 합의에 도달하기 까지 문구 하나에서 부터 공동선언 서명을 정상들이 할지 말지 등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김일성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궁전 방문 여부'는 정상회담 진행중에도 논란이 됐고, 결국 우리측 주장대로 방문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 합의의 막후는 협상주역들간의 총성없는 전쟁으로 얼룩진다.

새삼스레 임 전 원장의 회고를 돌이켜 보는 이유는 현재 진행중인 남·북·미 삼각정상회담과 관련한 두 가지 관점 때문이다.

먼저 남북정상의 '4·27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의 실효를 담보할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가 중재자를 자임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중재자의 입장을 여러번 강조했거니와, 급기야 이낙연 총리가 지난 27일 "미국이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이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핵보유국 북한의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된 대한민국이 한반도 비핵화, 북한 핵폐기 협상의 당사자에서 배제되는 건 비현실적이다. 남북화해와 평화공존, 비핵화와 관련해 중요한 합의를 이루었던 지난 남북회담의 역사의 주역은 남북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 미국이 있었고 남북이 미국을 염두에 둔 간접화법 외교를 펼친 것이 사실이지만, 회담 주역은 당사국인 남북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막후 역할을 주목하게 된다.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실현이라는 대북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한·미 동맹이 역할 분담을 한 결과 표면적으로 우리가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해도, 막후에서 CVID식 북핵폐기 협상의 당사자로서 국면관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가령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상원에서 북한 CVID와 미국 CVIG,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폐기'와 '북한체제보장'의 교환 및 북미 비핵화조약의 상원인준 카드를 공개했다. 이 카드가 밀도높은 사전조율 과정을 거친 한·미간의 막후 합의 결과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북한의 핵무력 완전포기는 체제의 살과 뼈를 도려내주는 최후의 선택이다. 트럼프에게 북·미 비핵화합의는 노벨평화상과 연임보장 카드다. 협상태도는 사생결단식이지만 회담의 최종결과는 예측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양측 실무협상에서 벌어질 디테일 전쟁에 숨어있던 악마가 우리를 해코지 하는 상황은 절대 발생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정청래 전 의원은 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현실의 속도가 상상의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다"고 논평했다. 현재의 남·북·미 삼각정상회담에 대해 더없이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다만 현실의 속도가 지나쳐 대한민국이 상상하던 장면을 훼손할 가능성은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운전석에 앉은 문 대통령이 운전대를 잘 잡는 것은 물론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있어야 할 이유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