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소속 불구 해방후 쪼개져
38선 이남을 '경기도 옹진군으로'
이때 미군이 편입한 백령·송림면
전쟁후 유일하게 남아 명맥 이어
사실상 다른 땅 개명 등 고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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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옹진군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5도가 서해 평화의 전진기지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통일시대를 대비해 남북으로 단절된 옹진군의 역사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옹진군(甕津郡)이라는 지명은 현재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과 '황해남도 옹진군' 등 2곳이 공유하고 있다. 8·15 해방 전까지만 해도 옹진군은 황해도 옹진반도 일대 1개읍(邑), 10개리(里)를 일컫는 지명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8선에 걸친 옹진군과 주변 지역 섬들은 남북으로 쪼개졌고, 미군정(美軍政)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38선 이남 지역을 한데 묶어 경기도 옹진군을 만들었다.

이때 황해도 장연군 소속 백령면(백령도·대청도·소청도)과 벽성군 소속이던 송림면(연평도·소연평도)도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했다.

한국전쟁과 휴전을 거치면서 경기도 옹진군의 육지 지역은 모두 미수복지로 남았고, 미군에 의해 뒤늦게 옹진군에 붙은 백령면과 송림면만 남아 명맥을 이었다.

1973년 부천군이 시(市)로 승격되면서, 그전까지 부천군의 면 단위 행정구역이었던 영종·북도·용유·덕적·영흥·대부면이 모두 옹진군 소속으로 개편됐다. 이때부터 경기도 옹진군은 남북의 역사가 뒤죽박죽 섞인 모습이 됐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옹진군이 지금의 7개 면 75개 리를 갖춘 우리나라 최대 해상군(海上郡)의 면모를 갖춘 것은 1995년 경기도 옹진군 전역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면서다.

이런 굴곡진 역사 탓에 옹진군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북한의 옹진군을 빼놓을 수 없지만, 남북 분단 이후 역사 단절로 관련 연구마다 한계에 봉착하곤 한다.

지난해 6월 옹진군의 의뢰로 '옹진 뿌리 찾기 고증용역'을 수행한 인하대 한국학연구소도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옹진 지역은 남북분단으로 인해 과거의 옹진 지역과는 전혀 다른 지역적 특성으로 나타나, 역사적 측면에서 단절된 역사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또 "남북의 군사적 대립과 충돌 속에서 옹진 지역이 국방의 보장처로 역할했다는 점만 부각되고 있다"며 "기존의 역사 서술의 한계성을 벗어나 역사적 정체성을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연구를 책임 총괄한 인하대 사학과 임학성 교수는 "서해5도는 역사 지리적으로 황해도 옹진군에 속했던 섬이 하나도 없지만, 이를 옹진군이라고 명명한 것은 냉전시대의 대결 논리가 함의됐기 때문"이라며 "오래지 않아 도래할 남북교류·통일의 시대를 대비해 명칭 개명까지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