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세 통한 소득재분배 강화위해
국민들과 정부 태도 변해야 한다
국민은 스스로 세금 더 낼 각오하고
정부는 부자증세나 핀셋증세 통해
복지재원 조달 힘든점 인정후 설득


경제전망대-허동훈10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
전임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지만, 실현 가능성을 믿은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제한적이지만 지방세를 중심으로 일부 증세 조치가 있었고 각종 조세감면을 없애거나 축소해서 세수를 늘렸다. 복지예산도 34%가량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동안 복지예산을 연평균 9.8%의 높은 비율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전임 정부와 달리 솔직하게 증세 필요성을 역설하고 실천에 옮겼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했고 소득세 과세표준 5억 원 초과 구간 최고세율을 40%에서 42%로, 3억∼5억원 구간 세율을 38%에서 40%로 올렸다. 부동산 보유세 인상안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므로 세금 인상은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이 있다. 증세가 부자증세 또는 핀셋 증세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고소득자, 대기업, 부동산 부자를 증세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대상자가 소수여서 조세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쉽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복지재원을 충당하기 어렵다.

복지는 시대적 대세다. 특히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별다른 제도적 변화가 없더라도 복지예산 확대가 불가피하다. '고부담 고복지'가 아닌 '중부담 중복지'를 선택하더라도 부자증세만으로는 재원조달에 한계가 있다. 북유럽의 소비세율은 평균 25% 수준이다. 소득 순서로 순위를 매긴 다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소득을 중위소득이라고 한다. 노르웨이의 중위소득자는 소득세율이 35% 정도 된다. 한국의 중위소득은 2천400만원에 불과하다. 한국에 노르웨이 소득세제를 도입하면 이런 사람도 소득세를 840만원 내야 한다. 한국의 중위소득자는 소득세율이 낮은 데다 각종 감면과 공제 때문에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 납세자 대다수의 소득세 실효세율이 2% 미만이다. 한국은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도 아주 낮다. 북유럽식 고부담 고복지가 아닌 중부담 중복지를 선택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세, 소득세, 부동산 보유세를 내야만 그 길을 갈 수 있다. 세금을 더 내는 것은 좋은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부자들이 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2014년 기준 근로소득 3천500만원은 상위 35%였다. 그런데 연봉 5천만~7천만원 받는 사람들이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어 세금이 약간 늘어나자 들고 일어났다. 이게 유명한 2015년 초의 연말정산 파동이다. 연봉 5천만원대면 상위 20% 안에 해당하지만 실효세율은 3%대다.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고소득자가 아니라고 여기고 세금은 다른 사람들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억대 연봉은 말할 것도 없고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도 소득세를 더 내야만 중부담 중복지가 가능하다.

그리고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에 대한 오해도 없어져야 한다. 부가가치세는 누구에게나 같은 세율이 적용된다. 그런데 저소득자는 소득 대부분을 지출하지만, 고소득자는 저축 여력이 크다. 저소득층의 소득대비 부가가치세 부담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간접세가 사실상 역진세이고 소득분배를 악화시킨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가가치세율이 10%이므로 110만원의 소득을 전액 지출하는 사람은 1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낸다. 1천100만원 소득 중 880만 원을 소비하는 사람은 80만원의 세금을 낸다. 걷힌 세금 90만원을 균등하게 지출하면 소득이 110만원인 사람이 훨씬 더 이득을 보게 된다. 복지예산의 비중이 늘어가는 추세를 고려하면 아마 세금은 소득이 110만원인 사람에게 더 쓰이게 될 것이다. 즉 간접세를 통해서도 소득재분배를 강화할 수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국민들과 정부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남이 아닌 자신부터 세금을 더 낼 각오를 해야 하고 정부는 부자증세나 핀셋증세를 통해서 복지재원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