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리얼리티 쇼의 원조로 전문가들은 1999년 네덜란드방송에서 선보인 '빅 브라더'를 꼽는다. 9명이 출연해 100일 동안 한집에 사는 모습을 24대의 카메라와 60여개의 마이크를 통해 제작 방영됐는데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사람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가', '관음증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리얼리티 쇼는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미국에선 2000년 2월 폭스 TV의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가', 8월 무인도에서 16명의 사람이 생존 투쟁을 벌여 최종 승자가 100만 달러를 차지하는 CBS TV의 '서바이어'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무한경쟁과 승자 독식 형태의 생존 리얼리티 쇼가 예능프로의 주류를 이루면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는 미국 NBC 리얼리티 비즈니스 쇼 '수습사원(Apprentice)'이었다. 2004년 시작된 이 프로는 참가자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한 명이 연봉 25만 달러를 받고 트럼프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는 내용이다. 이 프로에서 트럼프는 한 명씩 떨어뜨릴 때마다 "넌 해고야! (You are fired)"를 마구 내뱉었고 이 말은 유행어가 됐다. 이 리얼리티 쇼가 트럼프의 대중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가 대통령에 출마한 뒤였다.
내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형 리얼리티 쇼가 될 전망이다. 올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로 시작된 이 리얼리티 쇼는 내일 두 사람이 만나 회담을 가짐으로써 사실상 시즌 1이 마감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리얼리티 쇼의 '극적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즌 2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전 세계 미디어가 이 회담을 주목하고 있으니 흥행은 일단 '대박'인 듯 보인다. 다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트럼프 김정은 두 사람에게 집중돼, 한반도 평화의 운전대를 잡으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감이 크게 약화 된 건 아쉽다.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를 논하는 장소에 주인이 없는 셈이 됐다. 그래도 이번 회담이 지구 상 유일한 냉전체제 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가는 어려운 첫 발을 떼었다는 상징성은 '역사상 최대의 쇼'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진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