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현 교수·천아영 치위생사 등 3명 시작
"자꾸 봐야 익숙" 정기적 내원 궁극 목표
개원후 2년여간 누적환자 3400여명 달해
"장애인 구강 보건 접근성 향상, 치과 의료 불평등 완화를 위해 기존 9개소인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확대 설치하겠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제73회 구강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이렇게 밝혔다.
정부는 구강보건법에 따라 2009년부터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시작했고, 인천에서는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 2016년 2월 치과센터 1층에서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열어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인천시가 지원하고 가천대 길병원이 협력해 3년째 운영 중인 이 센터는 치과 진료를 받고 싶어도 동네 치과에 다니기 어려운 장애인 가족들이 인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장애인 치과 진료 전문 기관'이다.
이 센터의 강점은 의료진의 노력과 인내심에 있다.
■ "자꾸 봐야 익숙해져요."
가천대 길병원은 인천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 개소를 2개월 앞둔 2015년 12월 이희현 교수(치과) 등 3명을 채용했다. 이 가운데 이희현(35) 교수와 천아영(26) 치위생사 등 2명은 개원 멤버로 지금까지 이 센터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다.
이 센터에 오는 환자 상당수는 일반 동네 치과에서 치료가 어려워 이곳저곳을 전전했거나, 치과 진료가 처음인 발달 장애인이다.
의료진이 '의자에 누워 주세요'라고 말해도 왜 누워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혹시 자신에게 해를 가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의료진은 환자, 보호자와 신뢰를 형성하는 게 우선이고 인내심을 갖고 진료에 나서야 한다. 이희현 교수는 개소 첫해 내원한 30대 지적장애 남성 사례를 들려줬다.
"처음 센터에 온 30대 지적 장애 환자분은 구역질이 심해 스케일링도 못했고 충치 치료를 꿈도 못 꿨어요. 저희가 체어에 앉히는 것부터 연습했어요. 입에 물을 넣고 참는 것, 코로 숨을 쉬는 것, 석션기를 입안에 대보는 일, 체어에 앉아 칫솔질 하는 일 등을 하루에 하나씩 했어요. 그래서 스케일링을 했고, 충치도 치료하고, 나중에는 보철까지 했어요. 자꾸 봐야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환자도 의료진이 해를 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들이 정기적으로 내원하게 하는 겁니다."
이희현 교수는 센터 부임 첫해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어했지만, 점차 정기적으로 오는 환자들이 생기면서 달라졌다.
"남을 해치려는 게 아니고 아프고 무서워서 소리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환자를 대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기본검진만 하던 환자들은 치주질환, 신경치료로 이어졌다.
이 교수와 '라포'가 형성된 보호자와 환자들이 적지 않다.
■ "제 스스로도 달라지는 게 있어요"
천아영 치위생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따라 장애아동시설에 정기적인 봉사를 다닌 경험이 많다. 인천권역장애인구강센터가 길병원에 문을 연다고 했을 때 지원해 채용됐다.
그의 첫 직장이었고, 장애인 환자를 돌보는 일이었다. 하루에 8~9명, 많을 때는 14명이 센터를 방문했다. 장애인 봉사 활동을 많이 한 천 위생사도 처음에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환자들을 위협적으로 느낄 때도 있었다.
"의사 소통이 아예 안 되는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오래 보면 볼수록 잘 알아봐줍니다. 마음의 문 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 2년 동안 보니 절 알아봐주시는 분도 적지 않아요. 힘든 만큼 보람이 있고, 제 스스로도 달리지는 게 있어요."
천아영 위생사는 "'왜 빨리 진료를 안 봐주냐'는 항의가 많다. 초진 같은 경우 예약 대기 시간만 한 달이기 때문이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기다리시는 분들 마음이 더욱 답답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아쉬워했다.
■ 장애인 진료 2년… 누적 환자 3천400여명
가천대 길병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누적 환자 수는 3천448명이었다. 전체 환자 10명 중 8명이 인천 거주 장애인이었다.
치료 내용은 치주질환(755건), 스케일링(590건), 우식 제거술(470건), 신경치료(424건), 발치(320건) 순이었다.
전신마취 시설과 3차원 방사선 장비, 구강 스캐너 등이 있다. 중증 장애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고난도 전신 마취가 가능한 게 일반 병원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전신 마취 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매년 100명이 넘는다.
기구 보여준뒤 설명… 세심배려 의료진 몫
'TSD 기법' 시행… 보호자도 안심 효과
■'진료 공포' 어떻게 극복 시키나
발달 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구강 진료는 전문 지식뿐 아니라 의료진의 '끈기와 인내'가 요구되는 분야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낸 '지역사회 장애인 구강보건사업 안내서'를 보면 발달 장애인들은 불규칙한 식습관 등으로 치은염, 치주 질환, 부정교합, 치아 우식증 등이 비장애인보다 많은 편이다.
의료진은 치료 단계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안내해야 한다.
환자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기구를 설명하고 보여준 뒤 실제 사용하는 'Tell-Show-Do(TSD)' 기법을 반복해서 시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TSD 기법은 의료진과 보호자의 신뢰 관계를 증진 시키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의료진이 제시하는 치료 계획은 '실현 가능성'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환자·보호자의 관리 능력을 봐야 하는데, 이 때문에 보철 치료는 가급적 피하면서 보존 치료가 행해진다. 치료 후 구강 관리법을 익히게 하는 것도 의료진이 담당한다.
발달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환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중요하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건강권법)은 장애인의 질병 예방, 치료, 재활, 보건 교육 등의 여건을 조성해 최선의 건강 상태를 유지할 권리인 건강권을 국가와 지자체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명기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