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거주자의 정신을 담는다
좋은 집은 자연·사람을 함께 품고
손수 지었다면 공간마다 이유 합당
남한강변 자락 '단출한 다산생가'
청빈한 삶·범접 못할 여백의 기운
그런 관점에서 집의 역할은 잡다한 것(잉여)들을 수납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너무 크지도 아주 작지도 않게 가족 개개인의 개성과 프라이버시를 우선으로 배려해야 할 듯싶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잠이나 자는 곳이지만, 가사노동이 전부인 주부일 경우 평생 모든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어서 특별한 할애를 하는 게 맞지 싶다. 그만큼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한다고 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집의 한 부분은 빈 공간(작은 방 하나라도)으로 두는 것이다. 식구 중 누구라도 여백이나 공백이 필요한 이를 위한 쉼터로서의 공간,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옛집 즉 한옥이 갖는 구조가 아닌가 싶다.
두물머리 근처 남한강변 자락에 이생의 집과 저 생의 집이 나란히 함께 있는 곳, 수많은 연구와 집필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 업적을 남긴 다산의 생가를 방문했다. 어느 계절에 들러도 하늘을 찌를 듯한 느티나무 아래 단출한 한옥의 멋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 그곳이라면 조급할 일이 없다. 요즘은 관광차 들르는 사람으로 붐비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공간마다 실학자로서의 청빈한 삶과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여백과 어디에 자리를 잡고 앉아도 방해받지 않고 연구와 집필에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은 집이 바로 다산의 초당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집필실의 당호도 그의 호를 따 여유당(與猶堂)일까.
구우(久雨)
窮居罕人事 궁벽하게 사노라니 사람 보기 드물고
恒日廢衣冠 항상 의관도 걸치지 않고 있네.
敗屋香娘墜 낡은 집엔 향랑각시 떨어져 기어가고,
荒畦腐婢殘 황폐한 들판엔 팥꽃이 남아있네.
睡因多病減 병이 많으니 따라서 잠마저 적어지고,
秋賴著書寬 글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보네.
久雨何須苦 비 오래 온다 해서 어찌 괴로워만 할 것인가
晴時也自歎 날 맑아도 또 혼자 탄식할 것을.
초당의 생가를 둘러보며 잠시 그 한옥이 부럽기도 하였으나 새삼 외롭고 고독했을 한 선비의 일생이 영화를 보듯 눈에 그려져 짠한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굳이 그 이유를 찾는다면 초당의 '구우(久雨)'라는 시가 답이다.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에 숨이 막힌다. 양수리에서 여주로 되돌아오는 동안 강변으로 끝없이 펼쳐진 패랭이와 망초꽃들. 중간에 차를 세우고 꽃무리 곁으로 다가가 두 팔과 손으로 쓰담쓰담해주었다. 다산이 별 볼 일 없는 관료들 눈에 들려고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것이 아니듯, 이 꽃들도 나 같은 인간 따위의 눈에 들려고 저리 열심히 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꽃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갓 태어난 첫딸처럼 사랑스럽다. 남한강가에서의 일박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김인자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