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장제도는 12세기 십자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수십만 명의 십자군을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장(標章)이 그 시작이었다. 기사단 특성에 따라 군장의 모양과 색깔을 달리했고 십자가를 독특하게 디자인한 표장을 옷에 달았다. 전쟁 후에도 표장은 국가 또는 왕에 충성을 바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의 상징이 됐다. 그게 훈장으로 발전했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은 무궁화 대훈장으로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받는다. 그 다음이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산업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순으로 훈장 종류만도 11개에 이른다. 무궁화 대훈장을 빼고 각 훈장마다 5등급이 있어 훈장 수는 모두 51개나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때 무궁화 대훈장을 받았다. 단 하루도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않고 훈장을 받는 것이 모순이라는 여론이 일자,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셀프 수여라고 해서 잡음이 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퇴임 직전인 2013년 2월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인 2013년 2월에 각각 셀프 수여해 비난에 직면했었다.
훈장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 2006년 개정된 상훈법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서훈을 모두 취소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공로로 받은 태극무공훈장은 물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10여 개 훈장도 포함됐다.
"상과 벌이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공과 죄에 따르지 않고 한 개인의 기쁨과 노여움에서 결정된다면, 상을 주어도 권장되지 못하고 벌을 준다 해도 징계하지 못할 것이다. 상과 벌은 공적인 데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정도전은 삼봉집 14권 조선경국전 정전(政典) 상벌(賞罰)에 상과 벌은 주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적었다. 조선을 건국하며 상이 제 가치를 갖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가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은 DJP 연합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내 국가적으로 예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가 5·16 쿠데타 주역이라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도 높다. 만일 생전에 이 상을 주었다면 JP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성격상 분명 고사(固辭)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