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집권당으로서 수평적 당청관계는 물론
친문의 프레임 과감하게 벗어나야
'민주당 정부'로 불릴때 촛불민심 반영위한
'정치'가 정치의 본령을 찾아갈 수 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민주화 이후의 정부의 명칭은 제6공화국,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로 불려왔다. 한 번도 정당의 명칭이 정부의 공식명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이는 한국정당이 시민사회의 균열과 이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현 정부도 민주당 정부로 호칭되지 않는다. 이는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청와대의 종속변수로 기능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한국당의 수구적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에 힘입어 지방선거에서 이겼다. 자력으로 결승에서 승리한 게 아니다. 그러나 수구적 보수야당에 대한 비토가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는 구조는 끝났다. 경제는 각종 지표가 보여주듯이 악화 일로에 있다.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당권을 위한 전당대회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에 의존하는 익숙한 정치프레임을 과감히 깰 수 있어야 한다.

현 정권을 문재인 정부로 지칭하느냐, 민주당 정부로 부르느냐의 정치적 함의의 차이는 작지 않다. 대통령제는 내각제와 달리 한번 선택받은 정부가 임기 동안 안정된 국정운영을 담당한다. 또한 내각제에 비해 대통령에 대한 권력의 집중도가 높음으로써 입법·사법·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의 작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집권세력은 당·정·청의 상이한 층위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체제라는 특수성을 갖는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성격을 띠는 정권일수록 청와대가 당과 정부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속성을 보인다.

역대 정권에서 보편적으로 수평적 당청관계의 유지가 요구되었던 것은 그만큼 당이 청와대의 보조기구나 종속변수로 움직이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청와대의 정책목표와 가치지향이 국민의 지지에 기반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국회에서 입법과 정책을 통해 구체화되지 않으면 제도화를 통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통령령이나 부처령은 정책의 기본 골격을 바꿀 수 없다. 집권세력 내부에서 집권당이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에 대한 시민적 분노의 정치적 표출이 촛불집회로 나타났고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을 이끌어냈다. 헌법절차에 따른 결과였지만 본질적으로는 주권자의 일반의지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현안을 시민들의 정치적 에너지의 직접적 발현에 맡길 수는 없다. 촛불집회의 정신과 정치적 에너지는 서서히 소진되어 가고 있다. 정치는 다시 일상적 문법에 맡겨졌다. 국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당이기주의에 입각한 원 구성 협상에 정치력을 낭비하고 있고, 여야 정당들은 21대 총선을 의식한 공천권 전쟁으로 계파갈등과 권력투쟁에 진입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대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민초들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타파를 외쳤다. 그래서 촛불혁명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회는 개점휴업이었고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정의로운 나라, 통합의 나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제도적 얼개는 청사진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회가 여야의 협치를 통해서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다. 집권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을 배출한다. 정당은 선거과정에서 지지자들의 이익을 표출시키고 집약함으로써 세력을 조직화한다. 이러한 정치과정을 거치면서 쟁점을 이슈화하고 계층 간의 이해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시민적 합의를 모색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집권당의 역할이 중차대한 이유이다. 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수평적인 당청관계는 물론 친문의 프레임을 벗어난 집권당이 되어야 한다. 현 정권이 문재인 정부 보다 민주당 정부로 호명될 수 있을 때 촛불민심을 반영하기 위한 '정치'가 정치의 본령을 찾아갈 수 있다. 이는 집권당이 청와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