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16강이란 큰 산 못 올랐지만
FIFA랭킹 57위가 1위인 독일 격파
'2002년 기적' 재현하듯 온국민 환호

경기결과 안 좋다고 비난보다는
그들이 흘린 땀과 노력 생각해줘야


수요광장 유승민10
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8년 6월 15일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로 4년 동안 전 세계인이 기다리던 축제 2018 러시아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드컵 하면 2002년 한·일월드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5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했지만 한 번도 16강에는 진출하지 못한 약팀이었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의 피와 땀이 섞인 투혼으로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때의 희열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2002년 이후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팀에 대한 기대는 나날이 올라갔고 그 올라간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의 실망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2002년 이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팀은 본선진출은 당연한 결과가 되었고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면 많은 질타를 받기 시작했다.

이번 2018 러시아월드컵 기준으로 월드컵 본선진출 기준은 210개팀이 참가를 해서 개최국을 제외한 31팀을 지역예선으로 선발하여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게 된다. 그중 우리나라가 속해있는 아시아에서는 총 46개팀이 참가하여 5팀만이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스포츠에서 당연한 결과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46개 팀 중 5개 팀 안에 들어서 본선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로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충분히 박수받고 격려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의 첫 상대는 스웨덴이었다. FIFA랭킹은 24위로 57위인 대한민국에 비해서 월등히 앞서있는 상대였다. 본선 첫 경기라 그런지 승리를 위해 정말 전력을 다해 뛰었다. 선수들은 온몸으로 절실히 이기고 싶다고 표현하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페널티킥을 허용하면서 1대 0으로 패배하였다. 유효슈팅 0개라는 아쉬운 결과를 남기며 첫 경기가 끝나갈 무렵 언론과 각종 SNS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비난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었다. 겨우 이제 본선 첫 경기가 끝났는데 마치 월드컵이 다 끝난 것처럼 비난의 글들은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어떤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올라올 정도로 비난의 수위는 높아져만 갔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밤잠을 설치며 뜨거운 열기로 응원을 해줬지만 경기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응원에서 비난으로 바뀌어 선수들을 질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표팀 선수들이 월드컵 본선을 진출하기까지 흘린 땀과 노력 그 과정을 좀 더 생각해 주어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이기고 싶고 잘하고 싶은 건 선수들 본인들 일 것이다.

본선 두 번째 상대는 남미 강호 멕시코였다. 16강 진출을 위해 승점이 꼭 필요한 경기였다. 경기 시작 전 질타를 많이 받은 후라 그런지 선수들의 표정엔 긴장의 표정이 역력했다. 전반적으로 슈팅 수도 17대 13으로 많았고 흐름을 주도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애매한 판정과 핸드링 반칙으로 인한 페널티킥을 허용하면서 2번째 경기도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경기 끝나기 직전 손흥민 선수의 골은 대한민국 팀에 대한 기대감을 남겨주는 멋있는 골 이었다.

본선 마지막 경기는 디펜딩챔피언이자 FIFA랭킹 1위인 독일이었다. 전 세계 모든 언론매체들은 독일의 승리를 예상했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승리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독일은 강팀이었다. 긴장감 속에서 시작된 경기는 폭풍전야처럼 조용히 전반을 끝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대한민국 선수들은 투지를 다해 모든 것을 바쳐 뛰었다. 경기를 보는 내내 왠지 모르게 2002년 경기가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선수들의 투혼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듯했다. 역시나 그 투혼 때문일까. 경기 실력과 데이터로는 설명이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FIFA랭킹 57위인 대한민국이 FIFA랭킹 1위인 독일을 2대 0으로 이긴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을 재현하듯 모든 국민이 들썩이며 환호를 하였고 2경기의 패배를 잊은 듯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비록 16강이라는 큰 산은 오르지 못하였지만 독일전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팀의 잠재력을 보았고 그 잠재력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월드컵을 대비 한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스포츠는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승자와 패자를 확인하는 것보다 흥미진진한 것이 그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비난보다는 그들에게 더 큰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57위가 1위를 제압하는 나라,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선진응원 문화를 가진 나라,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열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끝으로 월드컵의 열기만큼 다양한 스포츠대회도 국민의 관심과 사랑으로 응원받을 수 있다면 우리 선수들이 힘을 얻어 대한민국을 스포츠 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