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였다. 교과서 한 권만 들고 들어오는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수업이 시작되면 늘 "지난 시간 어디까지 배웠지?"라고 말했고, 우리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요!"라고 하면 "그럼 오늘은 구지가(龜旨歌)를 배우자"며 칠판에 향가를 적어 내려갔다. 일필휘지였다. 물론 책은 들춰보지도 않았다. 향가가 이두를 통해 암호처럼 해독되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향가 25수를 그렇게 배웠다.
향가는 통일신라 때 크게 유행하다 고려 초 소멸한 시가(詩歌)로 요즘으로 치면 인기가요다. 당시에는 훨씬 많은 노래가 불렸겠지만, 불행하게도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만 전해진다.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할 수 없어서 이두(吏讀), 즉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서 표기했다. 그러다 보니 해석에 어려움이 따르고 해독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향가는 신라 문학이라는 것 외에도 훈민정음 이전의 고어(古語)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자료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향가를 수록해 가르치는 것은 문학적 또는 역사적으로 '꼭 알아야 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향가처럼 일본에는 만엽집(萬葉集)이 전해져 내려온다. 상당수 작품이 지나치게 선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만엽집을 '일본 정신의 고향'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영희(李寧熙) 전 국회의원은 7권의 저서를 통해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를 이두체로 기술한 4천516수의 노래묶음'이라고 단언한다. 일본학자들은 기겁하지만, 일본인조차 해석 못 한 만엽집 일부를 이 전 의원은 고대 한국어로 모두 해독했다. 한자가 5세기 왕인박사 등 백제 학자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걸 떠올리면 이영희의 해독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수업 도중 향가 '구지가'의 해석을 놓고 인천의 한 사립여고 교사가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구지가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란 대목에서 거북이 머리가 남근(男根)으로 해석된다는 교사의 설명이 성희롱이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A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구지가가 이 정도면 처용가(處容歌)를 가르칠 땐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리 고전문학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꽤 많다. 이 잣대라면 우리의 고전문학 수업은 모두 중단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