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범죄·치부 감추려고
공공 기록 함부로 삭제한 것은
범죄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아
역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그 흔적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
진시황이 자신을 비판하는 유가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유생 400여명을 구덩이에 생매장한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은 아주 유명한 일이다.
우리나라 세종대왕 시절에 있었던 일도 널리 회자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만큼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인데,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사관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모두 적으니 왕으로서는 매우 불편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국왕이 되기 위해 친형제들을 죽였고 왕이 된 이후에도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이에 대한 사관들 평가가 궁금해 '태종실록'을 보려고 했다. 그러자 영의정 황희가 나서서 이렇게 진언했다. "불가합니다. 만약 실록을 보았다는 게 후손에게 전해지면, 후대의 임금도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워서 어찌 당대 기록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명백한 잘못을 바른 일처럼 꾸밀 것이고, 단점도 장점처럼 교묘히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런 기록이 남는다면 누가 실록을 믿겠습니까." 결국, 세종은 황희 말을 듣고 열람을 포기한다.
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은 물론, 사회 구성원 특히 공적으로 생산된 모든 기록을 토대로 성립된다. 그러므로 공공기관이나 그런 직무를 맡은 사람이 만든 기록은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 대통령이 만든 서류를 대통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없앨 수 없고, 국회의원이 만든 법안이나 의정활동 내용을 함부로 덮으려 하면 안 된다. 법관이 판결을 위해 만든 자료는 비록 재판이 끝나고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지워버리면 안 된다. 그 모든 것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산이며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는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 반출했다는 이유로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 엄청난 비극을 함께 본 바가 있다. 그런데도 이후 이런 일이 그치지 않고 계속 거듭되는 슬픈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 크든 작든 모든 공공의 기록은 함부로 폐기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행정안전부의 국가기록원 감사 결과, '제헌헌법' 초고 등 국가 주요기록물의 관리가 엉망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과 관련한 중요한 기록이 그것을 추진한 당시 대통령과 관련자에 의해 무단 폐기되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더구나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는 수많은 기록을 무단 반출해 은닉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촛불혁명에 의해 해임된 정권은 다음 대통령에게 인수인계할 자료가 거의 없으며, 매우 의심스럽게도 전자기록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사건이 하나 있으니,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대법원에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수사해야 하는 순간에 그의 컴퓨터가 '디가우징' 되었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했지만 '디가우징'은 간단히 '불법삭제'했다는 뜻이다.
기록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범죄나 치부를 감추려고 그런 짓을 한다. 기록을 지우려 했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이 범죄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기록의 내용과 관계없이 공공재를 파괴하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잘못을 덮기 위함이 아니면 기록을 지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역사는 지우개로 연필낙서 지우듯 쉬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진시황이 얼마나 독재자였는지, 조선의 태종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는지 잘 안다. 전직 대통령들이 지우려 한 기록에도 그들의 범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다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디지털 시대, 디가우징으로 하드디스크를 지운다 해도 그 흔적은 언젠가 다시 살아나 돌아올 것이다.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미 그들의 죄는 이 사회와 국민이 다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분명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