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의 피란민·어업 역사 담긴 북리 '선주집'
황해도에서 덕적도로 피란온 선주들이 덕적도 북리에 정착하면서 지은 '선주집'을 두고 어업 전성기 시절을 기억할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는 보전단체 주장과 경관 개선 차원에서 실태조사 후 소유주 등과 협의해 철거비 등을 지원하겠다는 해당 군청 방침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인천시 옹진군 덕적도 북리에 지어진 '선주집' 모습. /서은미씨 제공

NLL 인근 최소 3천개이상 방치
대다수 훼손 경관저해·안전위협
1950년대 피란온 선주 정착 주택
건축물 독특 문화재적 가치 주장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서해5도를 낀 인천 섬이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인천 섬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정작 지켜야 할 것을 버리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서해5도 해변을 점령한 '용치'(5월31일자 9면 보도)와 철거 우려가 제기되는 덕적도 '선주집' 등 2가지 사례가 최근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녹색사회연구소, 인천녹색연합, 황해네트워크 섬보전센터 등 시민단체와 서해5도 주민들은 23일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장과 경관을 훼손하고, 쓸모없는 서해5도 용치를 이제는 철거해야 한다"고 국방부와 인천시 등에 요구했다.

용치는 선박 접안을 막기 위해 바다 쪽을 향해 세워진 철·콘크리트 구조의 방호시설이다.

인천녹색연합 등은 지난달 15~1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일대를 조사한 결과, 이들 섬에서 최소 3천 개 이상의 용치를 확인했다.

해안가마다 2~3줄씩 수백 개가 설치된 용치 대부분은 쓰러지거나 훼손돼 기능을 잃은 상태다. 흉물스럽게 방치돼 섬 경관을 해치고, 어선을 운항하거나 맨손어업을 하는 주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대청도 주민 백광모씨는 "오래전부터 기능을 상실한 용치는 주민들의 어업활동과 해안관광에 지장만 줄 뿐"이라며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더 이상 용치가 서해5도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덕적도 북리에 있는 1950년대 건축물인 선주집은 철거될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남아있는 3채 가운데 2채가 빈집으로 방치돼 있는데, 옹진군이 공·폐가 정비를 위해 빈집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층짜리인 선주집은 황해도에서 덕적도로 피란 온 선주들이 어업 중심지인 북리에 정착하면서 지은 주택이다.

1층은 창고, 2층은 거실처럼 꾸며 선주들이 2층에서 자신의 배가 무사히 돌아오는지 늘 바다를 응시하면서 생활하도록 공간을 구성한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1970년대 초까지 '민어 파시'로 명성을 날린 덕적도 북리항은 한때 인구가 1만2천여명에 달해 '작은 인천'으로도 불렸다.

선주집은 실향민과 덕적도 어업 전성기 시절을 기억할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는 게 섬보전단체의 주장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빈집들을 당장 철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관 개선 차원에서 실태조사 후 소유주 등과 협의해 철거비 등을 지원할 방침"이라며 "빈집 중에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 1채도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은 인천 섬의 유·무형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정리할 민·관 공동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정구 황해섬네트워크 섬보전센터장은 "인천시가 정책적으로 '인천 가치 재창조'를 강조했지만, 현재 인천 섬에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부터가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며 "뺄 것은 무엇이고, 보전할 것은 무엇인지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섬 전수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